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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천재가 몰락한 왕가를 재건한 방법

오성윤 2023. 4. 1. 23:54

2018 러시아 월드컵, 로베르토 마르티네즈 감독의 벨기에는 ‘황금세대’라는 칭호를 받은 채 월드컵 조별리그 일정을 시작했다. 한 층 높아진 기대감은 부담감이라는 역효과로 작용할 수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성공적인 한 해를 보냈다. 브라질, 잉글랜드를 꺾고 3위라는 아주 우수한 성적을 거둔 것이다. 역대로 보면 다소 빈약할 수 있지만, 당시 벨기에는 가장 경쟁력 있는 한 팀으로 성장해 당당히 피파랭킹 1위 달성이라는 대기록을 수립하기도 했다.

4년이라는 시간을 거쳐 또다시 월드컵 무대를 밟게 된 벨기에의 선발 라인업에 변화는 거의 없었다. 평균 나이 34살의 노장 베르통언-알더베이럴트로 구성된 수비라인이 여전히 벨기에의 최후방을 보호했으며, 주장 아자르와 해결사 루카쿠는 2018년의 모습을 완전히 상실했다. 루이스 오펜다, 아르투르 테아테 등 새로운 얼굴의 합류가 있었지만 그들은 아직 대표팀에 완전히 녹아들지 못했다. 2018년에서 벗어나지 못한 벨기에의 스쿼드는 4년 전과 동일한 공격진이지만 콜로 무아니라는 엄청난 수확을 거두었으며 라파엘 바란을 제외한 백포의 모든 수비진에 변동이 있었던 프랑스와는 전혀 상반되었다.

2022년에도 벨기에의 포백을 지탱하고 있는 토비-얀


발전을 거듭하지 못한 것에 대한 대가는 가혹했다. 월드컵 3위라는 호성적이 무색하게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충격적인 성적표를 받게 된 것이다. 모로코가 쓴 이변의 희생양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충격적인 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벨기에 축구협회는 로베르토 마르티네즈와의 동행을 마무리하고 그에 대한 대체자로서 도미니코 테데스코 감독을 선임했다. 확실한 성공 전례가 없어 다소 불확실한 측면이 존재하는 감독으로 평가되었지만, 벨기에는 2022 월드컵에서의 실패를 교훈 삼아 시 시대를 개척해야한다는, 테데스코는 계속된 하락세를 끊고 감독 시장에서 확실하게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이해관계가 서로 맞아떨어지면서 동행을 결정하게 된 것이다.

벨기에 대표팀에 부임한 도미니코 테데스코


벨기에는 황금세대의 주역들의 노쇠화와 그 후계자들의 방황, 그리고 특정 포지션에 대한 인재 고갈과 이로 인해 발생한 공수 밸런스 붕괴 등 위태위태한 상황에서 불확실한 카드를 집어든 것이므로 도박에 가까운 선택을 내렸다고 봐도 무방하다. 테데스코 감독도 이번 커리어도 좋게 보내지 못한다면 더이상 상위 구단들이 그의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선임했던 가장 큰 이유인 잠재성이라는 매력을 잃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기에 절실함을 바탕으로 벨기에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았다.

그렇다면 테데스코 감독은 벨기에 대표팀에 어떻게 자신의 철학을 불어넣었을까?

테데스코 감독이 빌드업 국면, 전개 국면, 수비 국면을 포괄한 모든 국면에서 가장 중요시한 가치는 바로 ‘컴팩트함’이다. 골키퍼를 제외한 그라운드 위 10명의 선수들이 4-4-2와 같은 대형을 갖추어 하나의 블록을 형성하고, 전방 압박 등을 통해 상대의 빌드업 국면을 저지하지 않고 압박 기준점, 즉 벨기에가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형성한 대형 수비블록에 진입할 때까지 대기하는 비점유 시간 동안의 조직 수비 방식을 취한다. 그렇다면 테데스코 감독이 보통의 팀이 수비 국면 시 활용한 통상적인 두줄 수비 라인보다 더 밀집된 마치 하나의 유기체와 같은 수비 블록을 형성함으로써 얻고자 한 효과에 대해 깊이 알아볼 필요성이 있다.

스웨덴의 전환 방향을 통제하러 가는 벨기에의 대형 수비 블록 (출처: DAZN)

벨기에가 대형 수비블록을 형성하고 상대의 전개 방향으로 블록을 이동함으로써 중앙 패스길을 통제한 이유는 바로 상대의 전개 방향을 측면으로 유도하기 위함이다. 중앙에 편중된다는 벨기에 수비 블록의 고유 성질로 인해 측면에 상대적으로 많은 공간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 공간에 대한 상대의 공략 상황을 의도적으로 연출하고자 한 것이다. 상대의 무게중심을 측면으로 이동시키는데 성공한 벨기에는 양쪽 풀백은 안쪽으로 간격을 좁혀 촘촘한 최종 수비라인을 형성하고 주로 카라스코-루케바키오로 이뤄지는 양쪽 측면 미드필더가 1차 방어선으로서 상대의 측면을 봉쇄하는 수비전략을 선보이며, 이는 벨기에의 컴팩트한 대형 수비 블록은 이를 현실화할 수 있는 핵심 요인으로 기능한다.

7번-카라스코, 5번-카스타뉴, 우측 풀백 카스타뉴가 안쪽으로 이동하고 카라스코가 측면 수비 담당

수비 국면에서 벨기에의 대형 수비 블록은 상대를 통제하는 데 매우 적합하지만 ‘촘촘함’과 ‘밀집’ 자체는 테데스코 감독이 추구하는 바가 아니다. 이는 벨기에의 빌드업 국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테데스코는 전개 국면에서 세부전술을 수행할 때 이점으로 작용하는 수적 우위 상황을 발생시키기 위해 왼쪽 측면에 대부분의 선수를 배치하고 수비라인을 백스리로 전환하여 카스타뉴를 우측 스토퍼로 기용한다. 반대로 좌측 풀백 테아테는 왼쪽 터치라인 부근에서 주로 활동반경을 가져가며 마치 인버티드 풀백과 같이 중앙을 넘나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벨기에가 준비한 공격 작업의 차선책일 뿐이다.

테데스코 감독이 비효율에 가까울 정도로 왼쪽 측면에 많은 선수를 배치하는 이유는 상대를 한쪽 측면으로 밀집시킴으로써 상대의 비효율 또한 유도하기 위함이고, 상대가 의도대로 움직이면서 발생한 공간에는 우측 윙어인 루케바키오/바카요코가 대기한다. ‘저밀화를 위한 과밀화’를 의도한 것이다. 루케바키오의 아이솔레이션 유도에 성공했을 때 테데스코 감독은 이에 대한 후속 전술로 루케바키오 보조를 위해 더 브라위너에게 측면으로 돌아 들어가는 움직임을 주문하는데, 이는 상대의 미스매치를 유도함으로써 루케바키오의 개인 능력을 극대화시킨다는 중요한 기능을 한다.

KDB의 움직임으로 루케바키오와의 1vs1을 준비하던 스웨덴의 LB의 대인 방어 상대에 변동 발생 (출처: SPOTV NOW)

하지만 이는 상대적으로 공의 전진 속도가 빠른, 즉 루케바키오의 아이솔레이션 상황이 가장 이상적인 구도로 실현되어 빠른 속도로 빈 공간을 공략할 수 있는 상황에만 국한되는 부분 전술이다. 상대가 수비 진형을 가다듬어 공략 가능한 측면 공간이 축소되는 지공 상황에서 우리는 트로사르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트로사르는 테데스코 감독에게 있어 오프더볼 상황에서의 영향력이 지대한 선수다. 주로 좌측에서 포지셔닝을 가져가지만 이는 수적 우위를 위한 지원 움직임에 해당할 뿐이며 따라서 우측에스 공격 작업을 펼칠 시 수적으로 열세에 놓여있다면 유동적으로 활동지역에 변화를 가져갈 수 있다. 위의 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듯, 오프더볼 움직임을 통해 상대 수비의 집중을 분산시켜 루케바키오의 공간 확보에 기여한다.

상대 수비 사이 공간으로 쇄도하는 움직임을 통해 상대 수비를 무르는 효과를 가져간다 (출처: SPOTV NOW)

반대로 왼쪽 측면은 지공 상황에서 더 많은 선수들이 더 세밀한 플레이를 통해 공간을 창출한다. 위의 장면을 단적인 예시로 들 수 있는데, 수적 열세 상황에서 상대 선수를 끌어내는 움직임을 통해 공간을 창출하고 이로 인해 수적으로 불리해진 상대 수비를 붕괴하는 패턴 플레이가 준비되어 있다. 또한 이 과정에서도 왼쪽 측면을 종방향으로 삼분할 했을 때 해당 구역의 왼쪽 측면 지역이라고 할 수 있는 터치라인 부근을 적극 활용하여 상대 수비를 유인하고, 제삼의 선수의 중앙 쇄도를 통해 득점 상황까지 만들어내는데, 이는 테데스코 감독이 빌드업 국면과 전개 국면에서 아이솔레이션 상황을 만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벨기에 선수들을 한쪽 측면으로 몰아넣은 전술적 선택과 같은 양상이다.

터치라인으로 달려가는 동료에게 패스 연결, 이후 상황에서 더 브라위너의 중앙 쇄도로 득점 성공 (출처: SPOTV NOW)


경기 도중 세밀한 플레이가 플레이가 나타나는 지역의 방향은 유동적으로 변화할 수 있으나, 활발하게 공격 방향 자체를 전환하려는 상황은 잘 연출되지 않는데, 이는 왼쪽에서는 오나나/트로사르가 카라스코와, 오른쪽에서는 더 브라위너/트로사르가 아이솔레이션 상황을 맞이한 루케바키오와 세부 전술을 수행하기에 중앙이 상당히 엷어져 방향을 전환하는 상황에서 공의 소유권을 잃었을 시 실점에 근접한 장면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역효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대비하기 위해 순간적으로 라인을 올려 카스타뉴가 전개에 가담하는 장면도 빈번히 발생했으나 굳이 무리하게 전환을 가져가지 않는다. 방향 전환보다는 공격이 이뤄진 측면에서 해당 장면을 마무리 짓거나 루카쿠가 위치한 상대 박스 안으로 공을 투입하는 것을 최우선시 한다.

넓은 공간이 발생한 상대 수비라인에 자리 잡고 카라스코와 연계하려는 루카쿠 (출처: SPOTV NOW)


스웨덴전, 독일전 단 두 경기만을 치렀지만 테데스코 감독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좋은 경기력과 더불어 결과까지 챙겼기 때문이다. 물론 수비 국면에서 오나나의 블라인드 사이드를 공략했을 때 뒷공간에 대한 불안감 또한 발생했다. 허나 이러한 수비적인 문제점을 노출했음에도 불구하고 테데스코 감독이 두 경기 모두 바카요코, 테아테 등 젊은 피를 중용했다는 점은 세대교체라는 벨기에의 비전에 부합해 현재까지는 흠이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2년차 징크스가 있는 테데스코 감독에게 있어서 내년 개최될 유로 2024는 다음 월드컵 뿐만 아니라 향후 자신의 커리어에 대한 분수령이 될 공산이 크다. 따라서 테데스코 감독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2024년을 잘 준비할 필요가 있고, 유로에서 구세대와 신세대를 잘 조화시키며 국가대항전에서도 경쟁력을 선보여야 한다는 임무를 잘 소화해낸다면 이는 커리어를 반전시킬 수 있는 기회로도 작용할 수 있다. 황금세대를 이끌었던 로베르토 마르티네즈 감독 마저 들어올리지 못한 우승트로피까지 들어올린다면 자신의 가치를 더욱 드높일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은 제 사견이며 글의 구조적 안정감을 위해 제 생각임을 밝히지 않은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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