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K리그 전술분석

에르난데스는 ‘제2의 무고사’가 될 수 있을까

오성윤 2023. 3. 13. 17:05

K리그는 지난 시즌 발간한 ’K리그 테크니컬 리포트‘에서 2022시즌 전술적으로 가장 뛰어났던 올해의 팀으로는 인천 유나이티드를, 올해의 선수로는 에르난데스를 선정했다. 인천은 조성환 감독 휘하에서 구단 최초 AFC 챔피언스리그 진출이라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새롭게 장식했기에 울산 현대가 작년 시즌 전북 현대를 제치고 17년 만에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그들이 리그에서 가장 파격적이며 놀라운 행보를 보여주었다고 하더라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에르난데스의 선정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이른바 ‘가짜 9번’이라는 전술적 역할을 완벽히 수행하며 인천의 상승세에 크게 기여했다는 것이 바로 핵심적인 근거이다. 실제로 인천은 에르난데스를 주축으로 하여 전북을 3년만에 꺾는 등 좋은 기세를 가져갔으나, 23R 서울전 에르난데스를 부상으로 잃고 난 이후 일정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승률도 승률이지만 에르난데스의 합류 이후 인천은 수비적으로는 호평을 받았으나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비판받았던 공격 국면에서의 답답함에 대한 갈증을 완전히 해소하는 경기력을 보여내기도 했다.

경인더비에서 입은 부상으로 인해 시즌 아웃 판정을 받은 에르난데스는 서포터들에게 잔여 시즌을 더 이상 보낼 수 없다는 아쉬움과 다음 시즌에 대한 기대감을 함께 안겨준 채 재활에 매진했다. 수술을 마치고 팀에 합류한 에르난데스는 곧바로 개막전과 두 번째 라운드에 연달아 출전했고, 이내 지난 시즌 못지않게 뛰어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특히 경인더비에서는 교체 투입된 이후 제르소가 위치한 왼쪽 측면으로 획일화되었던 인천의 공격 전개에 여러 활로를 개척하는 인상적인 활약을 보였다.

7개월만에 선발 복귀한 에르난데스 (출처: 베스트 일레븐)

앞서 언급한 에르난데스의 ‘가짜 9번’ 역할은 인천의 공격을 더욱 폭발적으로 만들었다. 빠른 발과 테크닉을 겸비한 제르소가 인천에 합류하였으며 지난 시즌 합을 맞춘 바 있는 김보섭 또한 공격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에르난데스의 복귀 이후 인천 공격에는 이전보다 더욱 활기가 생겼다. 공격 진영에서의 볼의 순환이 더욱 원활해진 것이다. 에르난데스 합류 이후 조성환 감독은 공격 국면에서 필드 선수들을 백쓰리와 한 명의 미드필더로 구성된 수비진과 나머지 6명의 공격진으로 분리하여 상대의 역습 차단과 공격의 효율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2023시즌의 경기 운영 체계를 더욱 확고히 하고 있다.

신진호를 필두로 4명이 후방 빌드업 전개, 나머지 6명은 앞선에 대기하는데 이때 에르난데스의 움직임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출처: 쿠팡플레이)

에르난데스는 무고사와 같이 전방에 머무르기보단 필드를 전방위적으로 뛰어다니면서 공격 작업에 대한 관여도를 높이는 것을 선호하는데, 에르난데스가 공을 받기 위해 내려가는 과정에서 발생한 공간으로 주력이 상당한 제르소와 김보섭이 쇄도하고 에르난데스가 키패스를 찔러주면서 양쪽 윙어에게 직접 득점 기회가 창출될 수 있다. 이러한 공격 루트는 볼은 빠르게 전진하고 에르난데스는 그 반대 방향으로 움직임을 가져가 공격의 기점 역할을 하기에 적합한 역습 상황에서 빛을 발한다. 지공 상황 시에는 공간 침투에 강점이 있어 연계 플레이를 했을 때 그 효과가 배가 될 수 있는 김보섭이 위치한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빈도가 높다.

에르난데스는 다소 아래에, 제르소는 쇄도를 위해 전방에 위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고, 김보섭과 연계 플레이가 가능한 오른쪽에 히트맵이 포진돼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 (출처: SofaScore)


에르난데스는 전방에서 전방위적인 활동 범위를 가져가는 만큼 ‘가짜 9번’ 역할 뿐만 아니라 측면으로 빠져들어가는 플레이에도 강점을 보였다. 양쪽 윙백인 정동윤과 김도혁의 공격 가담 속도가 느릴 시 에르난데스가 측면에서 연계를 도우며 무리한 개인 돌파로 공의 소유권을 내주거나 공격의 템포가 늘어지는 것을 방지했다. 하지만 에르난데스가 측면으로 빠지게 되면 중앙에 선수가 없어 인천의 공격이 측면에 고립되는 역효과가 나타날 수 있는데, 이때 조성환 감독은 이명주-신진호 중원 중 한 명에게 높은 위치에서의 포지셔닝을 가져가도록 지시함으로써 방향 전환에 유연함을 가미했다. 이는 경인더비에서 이명주-신진호 중원의 역할 분담에 실패한 후 한 경기만에 대체 전술을 준비한 조성환 감독의 빠른 보완 능력을 보여준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공격 국면에서의 연계성 플레이로 인천 입단 후 적지 않은 공격포인트를 생산해낸 에르난데스지만, 사실 에르난데스의 최대 장점은 따로 있다. 바로 ’전방 압박‘이다. 인천은 상대 진영 깊숙한 지역까지 무리하게 전방압박을 가져가지 않는 것을 압박 체계의 기조로 삼고 있으나 특정 지역에서부터는 패스 차단을 위해 거센 압박을 가하는데, 이때 압박의 시작점이 되는 쓰리톱을 이끄는 에르난데스의 에너지 레벨은 상대의 볼 투입을 소극적이게 하며 상대의 실수를 유발한다.

실례로 3R 제주전을 들 수 있다. 제르소-에르난데스-김보섭으로 구성된 인천의 공격진은 제주의 정운-송주훈-김오규 백쓰리를 상대했는데, 숫자적으로 대등한 상황이었기에 각각 한 명씩 담당하여 터치가 조금이라도 길어지면 이를 놓치지 않고 바로 달려가는 등 조금의 전진도 용납하지 않았다. 제주는 구자철의 개인기량을 통해 소극적 운영에 대한 문제는 어느정도 해결했지만, 인천의 압박에 의해 주요 공격 루트인 측면이 봉쇄되며 전반적인 경기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다리가 길고 순간속도가 빠른 에르난데스가 나이대가 제주의 노련한 수비진을 괴롭혔듯이, 평균 연령이 높은 축에 속하는 K리그의 수비진을 상대로 에르난데스의 에너지 레벨과 활동량은 좋은 무기로 활용될 수 있다.

인천의 쓰리톱이 제주의 백스리를 압박하며 중앙 전개를 저지하고, 2차적으로 중앙 미드필더와 윙백이 측면 지역 압박 (출처: 쿠팡플레이)

에르난데스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만능형 스트라이커’이다. 결정력도 출중하지만 이외의 현대축구에서 스트라이커가 살아남기 위해 가져야 할 능력을 모두 탑재하고 있다. 신체적 조건도 좋은 축에 속하기 때문에 피지컬적인 능력이 강하게 요구되는 K리그에서 살아남기에도 유리하다. 당시 리그 득점 선두를 차지하는 등 인천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군림했던 무고사의 급작스러운 이탈에 대해 K리그2에서 두각을 드러낸 에르난데스를 공수해 온 인천의 스카우트 시스템은 단연코 인천 반등의 일등 공신이라 할 수 있다.

무고사의 능력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활용폭만 놓고 본다면 무고사보다 더 유용한 자원이다. 그간 다소 딱딱하고 답답했던 인천의 공격에 유연함을 불어넣었다. 과연 무고사와 에르난데스가 함께 경기장을 누볐다면 얼마나 폭발적이었을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제2의 무고사’가 아닌 ‘제1의 에르난데스’로 성장할 에르난데스의 앞으로의 미래가 기대될 따름이다.


Futball Creater United 이사 오성윤

페이스북 ‘K리그 대신 전해드립니다‘ 부관리자 오성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