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K리그 전술분석

광주가 공간을 만드는 방법

오성윤 2023. 3. 23. 16:47

축구에서 ‘공간‘은 끊임없는 고찰의 대상이었다. 일정한 규격의 피치 안에서 어떻게 하면 한정된 공간을 더욱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고, 어떻게 하면 상대의 빈틈을 공략하여 공간을 더욱 수월하게 창출할 수 있을까에 대한 실마리를 찾기 위해 축구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이른바 ’천재‘ 감독들은 위와 같은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혁신적인 접근법을 제시해왔다. 이를 계승하고 발전시켜온 현대축구에서 공간은 더욱 많이 만들고 많이 가진 자가 경기를 지배한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승리를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로써 작용한다.

감독 데뷔 시즌 팀의 1부리그 승격을 이끌고, 승격하자마자 K리그에 돌풍을 일으킨 이정효 감독의 광주FC는 공간 창출에 대한 이해도와 실행력이 굉장히 높은 팀이다. 그 중심에는 다년 간의 수석코치 생활을 통해 전술적 식견을 확장하고 자신만의 확고한 철학을 설계한 후, 양질의 훈련 세션 하에서 선수들을 자신의 전술에 적절히 융화시킴으로써 팀의 색채를 더욱 끈끈하게 만든 이정효 감독이 위치해있다. 실제로 광주FC는 더 높은 수준의 상위 리그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자원들을 속속들이 영입한 이후, 태국 치앙라이에서 진행된 프리시즌 동계 훈련 캠프에서 전술 훈련을 통해 팀을 완성시켰다.

이정효 감독 (출처: 한국프로축구연맹)


2022 K리그2를 호령한 광주FC는 이정효 감독 체제에서 3-4-3 시스템을 바탕으로 역동적이고 파괴적인 축구를 구사했다. 4백을 혼용하기도 했으나 박한빈이 수비진의 중심을 잡아줌으로써 후방에 최종 수비라인를 형성하고, 양쪽 사이드백이 모두 높게 올라가 유기적인 스위칭을 통해 상대 수비진의 분열을 유도하였다. 필요 시에는 스토퍼를 담당하는 아론이 측면 개인 돌파로 공격에 관여하는 등 수비진의 공격에 대한 관여도 또한 높이고자 했다.

2022 K리그2 부천전 광주FC의 애버리지 포지션, 두 스토퍼의 공격 가담 정도와 풀백의 높은 포지셔닝을 엿볼 수 있다 (출처: SofaScore)


1부리그로 무대를 옮긴 이후에도 광주FC의 기본 시스템에는 변동이 없었다. 상대의 전력과 현실성을 고려하여 수비라인의 높이, 압박 기준점 등은 2부리그 시절보다 소극적으로 설정했을 수 있지만, 지난 시즌 보여준 자신들만의 축구를 고스란히 실행했다. 다시 말해 광주는 이정효 감독이 마련한 공간 창출 방법을 1부리그에 그대로 적용했고, 결과부터 말하자면 그 파급력과 효과는 대단했다. ‘언더독’이라는 별명 아래 구단 마케팅과 성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특히 2R FC서울전 패배 이후 “저렇게 축구하는 팀에 졌다는 게 분하다”고 밝힌 인터뷰는 몇 주간 K리그를 달궜다.

광주FC는 표면적으로 4-4-2 시스템을 채택하나 실제 경기에서는 지난 시즌과 동일하게 두 명의 중앙 미드필더 중 한명이 수비진의 후방 빌드업을 돕기 위해 낮게 포지셔닝을 가져간다. 양쪽의 사이드백은 수비에 치중하기 위해 비교적 낮게 위치하고 과감한 오버래핑을 최소한으로 가져가며 공격 국면에서는 직접 공을 운반 혹은 투입하기보다 중앙에서 측면을 정방향으로 하는 공격 전개에 유연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맡는다.

온더볼 상황이든 오프더볼 상황이든, 광주FC의 사이드백들은 중앙 진출을 위해 상대 측면을 공략하는 과정에 있어서 윤활유 기능을 한다. 일단 광주FC의 측면 전개 시 대략적인 전형에 대해 파악할 필요가 있는데, 위의 자료와 같이 광주FC는 측면에서 4명의 선수가 패스워크를 위해 사각형 혹은 사각형의 형태가 갖춰지지 않더라도 4~5명의 선수가 유기적으로 상대의 압박을 풀어나올 수 있게끔 대형을 갖춘다. 이때 사각형은 적어도 측면에 한해서는 연속적인 성질을 띠고 사각형 형성에 참여하는 선수의 포지션은 무관하며 선수 개인은 자신이 스위칭한 위치와 걸맞는 움직임과 판단을 취해야 한다.


다음 사진은 광주FC가 추구하는 측면 공격에 대한 단적인 예시이다. 오른쪽 측면에서 네 명의 선수는 볼을 전개하기 위해 약속한 대형을 형성하였고, 해당 장면의 시발점이 된 중앙 미드필더의 박스 안 침투와 이에 따른 타 선수들의 측면 전환을 반복하며 결국 중앙에 다시 빈 공간을 발생시켰다. 이 상황 이후에도 선수들이 측면과 중앙을 오가는 스위칭을 가져감으로써 이 장면은 결국 슈팅으로 끝나는 하나의 시퀀스로 귀결되었다. 이 장면에서 엿볼 수 있듯이, 단순히 4~5명의 선수가 대형을 이루는 것은 그 자체로 그리 효과를 발하지 못하지만 이 체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함으로써 우리의 선택폭은 확장하고 상대의 움직임을 제한할 수 있는 박스 안 침투와 측면으로 빠져나가는 움직임을 연속적으로 가져가는 데 이점으로 작용한다.

스위칭을 가져간 두 선수와 공간을 얻은 광주FC의 미드필더, 이후 상황도 같은 흐름으로 전개 (출처: 쿠팡플레이)


일명 ‘인버티드 풀백’의 역할을 다하는 것도 광주FC 풀백들의 주요 임무다. 측면보다는 중앙에서 공격을 풀어나가는 것을 선호하는 광주FC는 사이드백이 측면을 바라보기보단 중원 지역으로 공을 투입한다. 공을 투입한 이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수싸움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광주FC의 사이드백은 하프 스페이스 지역으로 접어들어오는 움직임을 가져간다. 하지만 이러한 오프더볼 움직임에는 이정효 감독의 숨겨진 묘수가 있으니 바로 ‘스위칭’이다. 사이드백이 안으로 접어들어올 때, 같은 측면에 위치해있는 공격수는 순간적으로 측면으로 빠져나간다. 이때 하프 스페이스 공간에서의 수적 대립 양상은 동일하지만 측면 공간에 대한 견제 정도는 더욱 경감된다. 세부적인 스위칭 전술을 통해 광주FC는 측면 공격수의 능력을 극대화시킴과 동시에 공간의 효율적 창출 또한 실현시킬 수 있다.

파란색: 오프더볼 움직임, 빨간색: 선수 배치, 검은색: 공의 위치 (출처: 쿠팡플레이)


지공 상황을 결정적인 기회들로 바로 연결하는 데 능한 광주FC는 경기당 평균 세트피스 횟수가 높은 편에 속하지는 않으나 완벽하게 실행됐을 시 상대의 지역 방어와 대인 방어를 무력화시킬 그들만의 확고한 세트피스 전술이 있다.

광주FC는 세트피스, 그 중 특히 코너킥 상황에서 하나의 ‘덩어리’를 만드는 것을 추구한다. 골대 쪽에 주로 위치하는 상대의 지역 방어 구역에 코너킥에 참가하는 선수들을 군집의 형태로 배치하고 의도적으로 한 명의 선수를 동떨어진 곳에 배치한다. 이정효 감독은 동떨어진 곳에서 세트피스에 방점을 찍어줄 선수에게 대인 마크가 붙어있다면 대인 마크를 순간적으로 벗겨내고 파포스트 쪽으로 뛰어들어가는 것을 주문하는데, 박스 안으로 붙여줄 경우에는 제공권에 강점에 있는 티모를 적극 활용한다. 티모가 공을 떨궈주면 골대 바로 앞에 위치한 선수들이 그것을 집중력을 발휘해 슈팅으로 연결시키면 된다.

공간을 위해 군집과 동떨어진 곳(검은색)으로 달려들어가는 티모 (출처: 쿠팡플레이)


박스 안이 아닌 박스 밖에 세트피스의 마무리를 지어줄 선수가 배치되는 코너킥 전술도 있다. 일단 인스윙 형태를 차용한다. 진형을 살펴보자면 세트피스에 참여한 두 명의 선수를 제외한 모든 선수를 최대한 골대에 가깝게 일직선으로 배열한 후, 미리 배치한 선수를 순간적으로 달려오게끔 하여 상대가 방심한 틈을 타 코너킥을 짧게 처리하고 이후 박스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또다른 선수에게 볼을 연결함으로써 완전히 자유로운 상황에서의 득점을 유도할 수 있다.

순간적으로 짧게 처리 (출처: 쿠팡플레이)
완전히 자유로운 공간 발생 (출처: 쿠팡플레이)


우리는 앞서 살펴보았듯 이정효 감독이 ‘공간’이라는 요소에 대해 상대보다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적극 차용하는 전술적 방안으로 풀백에 대한 활용법을 고안하고 세트피스 상황에서 최적의 기회를 맞이하기 위해 전술적 고찰을 지속하고 있다는 것을 꼽을 수 있으며 이는 광주의 반등 요인 중 하나이다. 2부리그 시절 마련했던 토대는 유지하되, 현실과 타협하여 2부리그 시절에 비해 조금은 변형을 준 선수 개개인의 활용법 등은 발전하여 1부리그에 정착하였고 다른 팀들이 배우고 적용할 요소 또한 충분하다.

이정효 감독이 K리그의 새로운 전술가로서 등장한만큼,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이정효 감독의 두 가지 대표적 공간 창출 사례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분명 더 많은 요소들이 광주FC의 우상향을 견인하고 있을 것이다. 체계적이고 전례없는 광주FC만의 특색 있는 전방 압박이 그 대표적인 예시다. 이정효 감독은 K리그에 새로운 매커니즘을 가져다 줄 인재가 될 것이며 앞으로 전술적으로 어떠한 지대한 영향을 끼칠 지에 대해 귀추가 주목된다.



*모든 것은 제 사견이며 글의 구조적 안정감을 위해 제 생각임을 밝히지 않은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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