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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L 33R 맨시티v아스날] 아스날은 펩의 무엇에 철저히 패배했는가

오성윤 2023. 5. 2. 21:07

2022/23시즌 EPL의 리그 테이블은 실로 흥미롭게 전개되고 있다. 오일머니의 자본력에 힘입어 ‘신흥 강자’로 우뚝 솟아오른 뉴캐슬의 상승세와 데 제르비 체제로의 전환 이후 지난 시즌 못지 않은 반란을 일으킨 브라이튼이 그 주인공이다. 이와 더불어 ‘빅6‘로서 리그를 호령하던 리버풀과 첼시의 극심한 부진, 그리고 토트넘의 끊이지 않는 내부적 갈등과 경기력 문제 등이 맞물리면서 EPL을 지탱해 온 전통 질서이자 일종의 장치로서 존재한 ‘빅6’ 체제는 붕괴하는 듯 보였다. 한때 맨시티와 우승경쟁을 펼치기도 했던 리버풀은 정상궤도에 안착하는 데 어느정도 성공하였으나, 토트넘과 첼시는 감독 교체 이후 더욱더 암울한 후반기를 보내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모든 빅6가 곤욕스러운 22/23시즌을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맨시티는 이번 시즌도 리그 최상위권에 위치하는 등 여전히 건재한 모습이었고, 맨유는 초반 흔들리는 시기가 있었으나 분위기를 반전시키는데 성공했다. 마지막으로 언급할 아스날은 아르테타 감독 ’4년차‘ 효과에 힘입어 맨시티와 함께 치열한 리그 우승 레이스를 펼치고 있으며 이는 리그 최고의 이변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마르티넬리-제주스-사카로 구성된 젊은 공격진을 주축으로 시즌 초반부터 어려움 없이 많은 승점을 쌓아 승점 차이를 벌리는 데 성공했으나, 진정한 심판대라고 볼 수 있는 ‘사실상 결승전’ 맨시티와의 경기에서 힘을 쓰지 못하는 모습을 드러냈다.

더불어 이번 시즌도 뒷심을 잡지 못하면서 결국 맨시티와의 승점 간격이 좁혀진 상태의 아스날은 맨시티와의 중요한 리그 2차전 경기를 맞이하였고, ‘제자’ 아르테타는 ‘스승’ 펩을 쓰러트리지 못하면서 리그 선두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그렇다면 아스날을 무너뜨리고 리그 선두를 탈환할 수 있도록 한 펩의 전술은 무엇이었을까?

출처: News Agencies


우선 경기에 나선 두 팀의 라인업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맨시티는 1.4.3.3 포메이션을 들고 나왔다. 부상 이슈로 경기에 나서지 못한 아케를 대신하여 아칸지가 LB로 출전하였고, 주력이 빠른 마르티넬리를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RB 자리에 워커가 출전했다. 또한 이 경기 맨시티는 그간 재미를 보았던 바 있는 WM 포메이션이라고도 불리는 1.3.2.5 형태의 선수단 대형을 구축하는 대신 경기 전 발표한 포메이션 그대로의 1.4.3.3 시스템을 유지했다는 점이다. 맨시티가 1.3.2.5 바탕의 축구를 구사할 것이라 예상한 아스날의 심리를 오히려 포백 그대로를 들고 나옴으로써 역이용한 것이다. LCM 귄도안이 좌측 후방 구역을 주요 활동 반경으로 삼고 RCM KDB는 지속적으로 최전방에서 포지셔닝을 통해 ST 홀란드와 투톱을 형성하면서 유동적으로 1.4.2.4와 같은 대형을 만들기도 했다.

아스날 또한 ‘시즌 베스트11’이라고 칭할 수 있는 선발 명단을 내세웠다. 부상으로 인해 경기 출전이 불가능했던 살리바 대신 홀딩이 RCB 자리를 담당한 것을 제외한다면 아스날은 자신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축구를 최대로 구현하고자 이전과 동일한 라인업과 경기 전술을 들고 나온 것이다. LB 진첸코가 인버티드 활용되어 DM 파티와 함께 전체적인 경기를 조율하고, 이에 따라 유동적으로 백스리를 구성하였다. LCM 외데고르는 ST 제주스와 함께 전방압박을 가했으며 공격 국면에서 ST 제주스와 LM 마르티넬리는 자유롭게 스위칭 플레이를 가져가면서 맨시티 수비진의 혼돈을 유발했다.

맨시티와 아스날의 라인업 및 대략적인 포메이션 변동 양상 (그릴리시 11->10)


다음은 아스날의 후방 빌드업 시스템이다.

아스날은 CB 홀딩은 깊게, LCB 마갈량이스와 RCB 화이트를 측면으로 넓게 벌리고 DM 파티와 LB 진첸코를 중앙 배치하여 역삼각형 꼴로 표현 가능한 1-4 후방 빌드업 시스템을 갖추었다. 이는 더욱 유동적인 선수간 스위칭 플레이를 통해 측면 및 하프 스페이스 공간을 창출하기 위함이다. 예를 들어, LB 진첸코가 오른쪽 측면을 위주로 공격 전개를 펼치기 위해 중앙으로 들어오면 DM 파티는 LCB 마갈량이스와 RCB 홀딩과 백스리를 형성하여 전개 국면에 숫자를 더한다. 또는 LCM 자카가 후방 빌드업을 돕기 위해 수비라인으로 내려오면 LB 진첸코는 왼쪽 측면 높은 구역을 차지하고 ST 제주스는 LCM 자카가 비워둔 중앙을, LM 마르티넬리는 ST 제주스가 비워둔 구역을 차지하는 방식의 후방 빌드업 시 유연한 스위칭 움직임이 나타났다.

이에 맨시티는 1.4.4.2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체계적인 압박 전술을 선보였고, 맨시티가 제시한 압박 전술의 핵심은 바로 ‘삼각형’이다. 맨시티는 촘촘한 두줄수비 라인을 활용해 연속적으로 수비 선수간 삼각대형을 형성함으로써 아스날의 써드맨, 즉 아스날의 최종수비 라인이 후방 빌드업을 전개할 시 볼을 받아주는 선수에 대한 압박을 강화한 것이다. 이때 맨시티는 써드맨에게 3v1의 수적 우위를 점하여 효율적으로 볼을 탈취해낼 수 있었다. 반면 아스날의 후방 빌드업을 주도하는 최종 수비라인 구성원에 대한 직접적인 전방 압박은 지양하되 압박의 방향은 최대한 측면으로 설정하여 패스 선택지가 마땅하지 않은 것으로 몰아가고자 했다. 아스날의 선수가 측면에서 볼을 잡았을 시 맨시티는 2v1 수적 우위를 통해 해당 선수를 압박했다.

이러한 맨시티의 압박 전술은 GK 램즈데일을 바로 뒤로 하는 아스날의 횡적으로 넓게 포진한 후방 빌드업 인원들의 패스 선택지를 좁히고 그럼으로써 볼의 전진을 더욱 늦출 수 있었다. 패스 선택지를 폭넓게 하기 위한 ST 제주스와 RCM 외데고르의 지원 움직임을 유도함으로써 아스날의 전방 인원을 줄이는 효과도 낳았다.

아스날의 후방 빌드업 시스템과 연속적으로 삼각형을 형성하는 맨시티의 수비 전술 (그릴리시 11->10)


위의 압박 전술은 비슷한 양상으로 아스날이 공격 국면을 전개할 시 수비 전술로써 전개되었다.

다음은 아스날의 전반전 우측 측면에서의 공격 패턴과 이에 대한 맨시티의 수비적 대응을 나타낸 그림이다. 가장 잘 하는 축구를 구사하고자 한 아스날은 역시나 RM 사카를 위주로 세밀한 패스워크 중심의 공격을 풀어나갔다. LCM 외데고르와 ST 제주스는 상대 포켓 공간에서 주로 포지셔닝을 취하면서 RM 사카와의 연계 플레이를 위한 움직임을 가져갔다. RB 화이트도 필요 시 오버래핑 움직임을 가져갔으나 낮은 지역에서 사카의 드리블 공간을 최소화하고자 한 맨시티의 수비 방식에 의해 오버래핑에 대한 충분한 시공간적 여유를 얻지 못하였으며 우측 공격 실패 시 맨시티의 카운터어택에 대비하기 위해 후방 2-3 대형의 일원으로써 남아있었다.

맨시티는 LB 아케와 LM 그릴리시를 활용하여 LM 사카를 묶고자 했다. 아스날이 후방 빌드업 전개할 때의 맨시티의 압박 전술과 동일한 구조로써 LM 사카를 2v1로 맨 마킹한 것이다. 이로 인해 LM 사카와 패스 선택지는 RB 화이트로 제한되었으며 RCM 외데고르는 사카의 수적 열세 상황을 풀기 위해 맨시티의 두줄수비 라인 아래 지역에서 LM 사카를 지원해야했고, 맨시티의 골대와 더 멀어진 아스날은 공격적 접근에 있어서 어려움을 겪었다. 맨시티는 또한 협력 수비에 성공했을 시 LM 그릴리시의 개인능력을 통해 볼을 전진시켰으며, 이때 아스날의 수비라인은 ST 홀란드와 RCM KDB의 침투 움직임으로 뒤로 물러나면서 LM 그릴리시가 볼을 운반할 공간을 허용하게 된다.

우측 공격을 전개하는 아스날과 낮은 구역에서 공간을 허용하지 않고자 한 맨시티의 수비 방식 (그릴리시 11->10)


이는 후반전 아스날의 후방 빌드업을 굉장히 낮은 지역에서부터 압박한 맨시티의 압박 시스템이다.

ST 홀란드와 RCM KDB가 역시나 투톱을 이뤄 DM 파티 혹은 다른 유기적인 움직임으로 형성한 아스날의 백스리를 압박하고, DM 로드리가 적극적인 움직임으로 안정감 있는 1.4.4.2 바탕의 6명으로 구성된 수비 블록을 형성함으로써 아스날이 공격을 풀어나갈 때 전진패스 등을 통해 전방으로 볼을 공급하는 통로 역할을 하는 RCM 외데고르와 LCM 자카에 대한 패스길을 차단하며 설령 둘에게 패스가 도달하더라도 둘에 대한 직접적인 압박을 강화함으로써 이후 과정에 대해 진전이 이루어질 수 없도록 강제했다.

측면의 경우 LM 그릴리시와 RM 베실바가 각각 RB 화이트와 LB 진첸코에 대한 견제 움직임을 취하지만, 이보다도 LB 아칸지와 RB 워커가 각각 RM 사카와 LM 마르티넬리를 묶어버리며 측면 패스길을 제한한다. 1v1로 말이다. 이들은 아스날의 LM/RM이 볼을 잡더라도 둘의 뛰어난 대인방어 능력이 빛을 발하며 아스날이 라인과 볼을 전진시킬 수 없도록 누른다. 이때 특히 LB 아칸지의 1v1 대인 방어 능력이 빛을 발했다. 뿐만 아니라 맨시티의 촘촘한 압박을 극복하고 아스날이 볼을 전방으로 공급하는 데 성공하더라도 ST 제주스와 2v1 수적 우위를 이루는 2CB를 통해 안정적인 대처가 가능하다.

라인을 끌어올려 아스날의 후방 빌드업을 방해하는 맨시티


아웃-포제션 국면, 즉 볼을 점유하지 않은 수비 국면에서 맨시티는 아스날의 빌드업을 방해하기 위해 적극적인 면모를 보였다면, 모든 빌드업 국면을 포괄하는 인-포제션 국면에서 맨시티는 다소 소극적인 경기 운영을 펼쳤다. 아스날의 전방압박 라인을 최대한 끌어들이기 위함이었는데, 맨시티의 후방 빌드업 국면에서 가장 많은 터치 수를 기록한 LCB 디아스는 아스날의 전방압박 라인을 가로지르는 패킹패스보단 GK 에데르송에게로의 백패스를 행함으로써 재정비를 취하기도 했으며 상대가 압박을 가하는 동작을 취할 때까지 볼을 전개하지 않고 상대를 응시하는 등 아스날의 전방압박을 의도적으로 활성화시켰다.

맨시티는 상대의 전방압박 라인을 끌어들임과 동시에 공간을 더욱 효과적으로 만들어내기 위해 또다른 전술 포인트를 가져갔다. LCM 귄도안에게 더욱 좌측으로 편중된 포지셔닝을 가져가게끔 하면서 실질적으로 3-2 형태의 후방 빌드업 시스템을 구축하였고, DM 파티와 LCM 자카가 각각 LCM 귄도안과 DM 로드리에게 끌려감으로써 아스날의 최종 수비라인과 전방압박 라인간 간격이 더욱 벌어지는 것을 유도했다. 이때 발생하는 공간을 이용하여 다양한 찬스를 창출하고자 한 것인데, 다음 그림에서 이에 대해 확인할 수 있다.

맨시티의 후방 빌드업 시스템 (그릴리시 11->10)


맨시티는 LCM 귄도안의 움직임을 통해 아스날 선수진의 좌측 과밀화와 전방압박 라인 유인에 성공하였을 때 발생한 공간에 대해 RCM KDB의 쇄도 움직임을 보였다. 그리고 수비라인 사이 간격을 넓게 유지하고 후방 빌드업에 대한 관여도를 낮게 유지한 RB 워커 또한 오버래핑 움직임을 가져간다. 이는 LM 마르티넬리에게 수비 판단의 압박을 가하기 위함이다. LCM KDB가 얇아진 라인 사이 공간을 활용하는 것에 대한 수비 움직임을 가져가면 RB 워커와 RM 베실바가 LB 진첸코에게 2v1의 수적 우위를 가져갈 것이고, 오버래핑하는 워커에 대한 패스를 차단하자니 LCM KDB의 공간 활용도 및 이후 공격 국면에서 LM 그릴리스-ST 홀란드가 참여함으로써 파생되는 또다른 공격 국면에 대한 리스크가 굉장히 컸기 때문이다.

아스날은 맨시티의 후방 빌드업에 대해 많은 숫자를 동원하여 전방압박을 가했으나 수비라인 사이 공간을 넓게 가져가고 GK 에데르송을 통해 빌드업 인원을 늘린 맨시티의 게임모델을 붕괴시키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으며 되려 위와 같은 상황을 계속적으로 허용하면서 슈팅 숫자를 내주었다.

맨시티의 라인사이 공간 활용


RCM KDB/ST 홀란드의 연계 움직임은 맨시티의 중앙 지역 전개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아래 그림에서 볼 수 있듯, 아스날이 GK 에데르송을 제외한 모든 맨시티 선수들에게 맨투맨을 붙인 상황에서 RCM KDB/ST 홀란이 순간적으로 내려와줌과 동시에 LCM 귄도안은 전진 움직임을 가져감으로써 맨시티가 공격의 활로를 열 수 있게된 것이다.

중앙에서 풀어나가는 맨시티의 빌드업 (그릴리시 11->10)


이러한 전술 양상으로 펩은 아스날을 상대로 4-1 완승을 거두었으며 34R 풀럼전 승리를 통해 리그 선두로 올라서며 리그 테이블 역전에 성공했다. 리그 우승에 더욱 가까워진 맨시티의 미소와 함께 제자 아르테타 감독을 철저하게 좌절시킨 펩의 냉혹함을 엿볼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큰 경기일수록 WM 포메이션 등 자신만의 변칙적인 게임 모델을 시도하기보단 점유율을 포기하고 더욱 스탠다드한 방식으로 접근한, 오직 승리를 위한 방법론을 선보이는 펩의 특징 또한 엿볼 수 있었다. 실제로 이 경기 두 팀의 점유율 차이는 근소하였으나 xG에 관한 지표에서 맨시티는 아스날을 완전히 압도하였다. 즉, 아스날의 슈팅은 제한하고 자신들의 슈팅은 계속해서 늘려가는 방식으로 경기를 지배한 것이다.

출처: @DatoBHJ


거의 대부분의 팀들이 5~6경기만을 남기며 시즌 막바지에 다다른 현재 시점, 역전에 성공한 맨시티가 끝까지 페이스를 유지하여 다시 한번 잉글랜드 제패에 성공할지, 혹은 아스날이 기적을 만들어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지, 정말 아무도 모르게 흘러가는 EPL 우승 레이스가 남은 몇 경기 동안 어떠한 양상으로 전개될지 그저 기대될 따름이다.



*모든 것은 제 사견이며 글의 구조적 안정감을 위해 제 생각임을 밝히지 않은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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