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일반 칼럼

<뛰는 남기일 위에 나는 김기동 있다>

오성윤 2022. 2. 24. 11:42

K리그1 1라운드, 두 명장의 승부가 펼쳐졌다. 바로 ‘전술가’ 남기일 감독과 ‘기동 매직’의 주인공 김기동 감독의 지략 대결이었다. 올해도 힘든 겨울 이적시장을 보낸 포항과 달리 모기업의 적극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알찬 스쿼드 보강에 성공한 제주의 승리가 예상되었으나, 모두의 예상을 뒤집고 포항이 산뜻한 3점 차 완승을 거두며 승점 3점을 챙겨갔다. 시즌 전까지만 해도 우승후보 중 하나로 꼽힌 것과 지난 시즌의 제주의 견고한 수비 체계를 생각하면 가히 충격적인 결과다.

제주를 상대로 개막전 승리를 따낸 포항 (출처: 포항 스틸러스)


물론 이번 경기를 남기일 감독의 전술적 패배라고 보는 시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경기가 남기일 감독의 전술적인 수가 먹혀들어가지 않아 패배를 면치 못한 것일지라도 남기일 감독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제주의 패배는 남기일 감독의 수에 대한 적절한 대응을 바탕으로 승리한 김기동 감독의 술책이 잘 먹혀들어갔다는 점도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제주는 지난 시즌 성공 가도를 달릴 수 있게 한 ‘짧은 패스 위주의 공격 전개’라는 컨셉을 더욱 튼튼히 하면서 더욱 풍성한 한 시즌 농사를 짓기 위한 청사진을 한 경기 안에 모두 제시했다고 느껴진다. 이는 포항도 마찬가지다. 김기동 감독은 이번 경기를 통해 한 시즌 장기 레이스를 어떻게 치를 것인지에 대한 계획을 ‘효율’에 초점을 맞추어 제시했다.

제주는 선수단의 질적, 양적 수준이 향상됨에 따라 전술적인 변화와 발전도 함께 따랐다. 일단 제주의 이번 겨울 이적시장 활동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남기일 감독은 김동준, 문경건 등 좋은 발밑을 가진 골키퍼들을 영입하며 후방 빌드업에 안정성을 더했고, 패스의 달인으로 통하는 윤빛가람과 최영준, 그리고 공격적인 카드로는 스웨덴 리그에서 에이스로 활약한 조나탄 링 등을 영입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겨울 이적시장 ‘FA 대어’ 김주공도 낚아채는 데 성공했으며, 대전과의 트레이드를 통해 한국 축구의 유망한 수비수 이지솔을 품기도 했다.

그렇다면 전술적 변동은 어떨까? 포메이션부터 살펴보자면 제주는 다소 특이한 라인업을 내세웠다. 바로 그동안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해온 최영준이 백쓰리의 중심으로서 선발 출전한 것이다. 이는 경기 시작 후 최영준이 자연스럽게 수비형 미드필더로 자리를 바꾸면서 4백을 형성한다거나 하는 전술 변화가 아닌, 최영준을 경기 시작 후에도 그대로 백쓰리의 중심에 머물게 하는 라인업 그대로의 의도한 선발 라인업 배치였다.

최영준의 히트맵. 이 경기 수비 라인에 머물러 경기를 조율한 것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출처: SofaScore)


이 점을 미루어 볼 때, 제주는 수비적인 안정감을 우선시한 지난 시즌과는 달리, 큰 틀에서의 공격 컨셉은 ‘짧은 패스를 통한 공격 전개’로 삼되, 이번 시즌은 1부 적응과 선수단 보강을 끝마친 만큼 다소 정적이고 답답했던 지난 시즌의 공격 방식에서 탈피하고 안현범 등 주요 선수들을 바탕으로 역동적이고 빠른 공격 템포를 가져가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미드필더를 최후방에 배치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수비적인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후방 빌드업의 질적인 향상을 원한 오늘의 실험적인 라인업이 이를 반증한다. 뿐만 아니라 양측 스토퍼로 출전한 정운과 김오규도 공격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새로운 외인 공격수 조나탄 링의 활용법도 눈 여겨 볼 필요가 있다. 링은 안현범과 같은 라인인 우측에 위치해있었는데, 조나탄 링이 보여준 인버티드 윙어와 같은 안으로 접어 들어오는 움직임 혹은 연계를 위해 좁혀 들어오는 움직임은 안현범에게 공간을 열어주었고, 이는 안현범의 능력을 극대화 해주었다.

그러나 김기동 감독은 이를 역으로 이용하기 위해 이광혁 등에게 압박을 지시해 좌측면을 틀어막았고, 제주의 공격 루트는 자연스럽게 우측면으로 획일화되었다. 포항이 준비한 ‘우측면 밀집수비’라는 함정에 빠진 제주는 국한된 공간에서 공격을 풀어나가야만 했고, 이와 같은 공격 국면에서 링-안현범 조합은 그다지 좋은 호흡을 보이지 못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타개법을 고안해 내 두 선수의 능력을 증폭시키는 데에 성공해낸다면, 정우재-제르소라는 강력한 좌측 라인에 비해 초라한 우측 라인 윙어 자리에 대한 갈증 해소라는 긍정적인 수확으로 귀결될 것으로 보인다.

요약해보자면, 제주 남기일 감독은 작년 전술의 단점 보완 및 전술에 맞는 선수 영입으로 자신의 전술 철학을 더욱 확실하게 하는 데에 치중을 했고, 포항 김기동 감독은 ‘유동성’을 택했다. 다시 말해 전력적으로 탄탄하지 않은 이번 시즌도 시즌전 미리 구상해놓은 전술을 밀고 나가기보단 전략적이며 매 경기 상대에 따라 달라지는 변칙 전술로서 시즌을 치르겠다는 한 시즌 구상을 밝혔다. 평소 높은 라인을 자랑하던 포항이 제주를 상대로 역습 기반의 경기를 준비했다는 것이 그 증거이다.

포항 김기동 감독은 제주가 빌드업에 강점이 있는 것을 파악하고 작년 전북이나 울산을 상대로 요긴하게 사용한 전방 압박을 최대한 자제했다. 대신 하나의 수비 블록을 형성한 후 중앙에서 과감한 압박을 가하고 의도적인 파울을 범하며 제주의 중원을 틀어막는 방식을 택했다. 정통 스트라이커의 부재를 이승모와 강상우의 적극적인 수비 가담으로 승화시키는 전술적 유연성을 뽐낸 것이다. 그리고 중원에서의 거센 압박은 곧이어 제주의 뒷공간을 공략하는 침투 패스로 이어지면서 안정성을 버리고 신속함을 택한 제주에게 후환을 치르게 했다.

결론적으로, 김기동 감독은 이외에도 첫 1부 도전을 하는 박찬용과 전역 후 복귀전을 치른 허용준이 예상 밖의 뛰어난 활약을 펼쳐주며 우승후보 제주를 상대로 승리를 따낼 수 있었으나, 반대로 제주는 점유율은 챙겼지만 결국 득점을 올리지 못하는 아쉬운 모습을 남겼다. 그러나 남기일 감독 역시 K리그에서 손꼽히는 전술가 중 한 명이다. 즉 자신의 전술적 패착을 빠르게 인정하고 이에 대한 대응책을 빠르게 마련해 이후 경기에 적용할 것이다.

완벽한 복귀전을 치른 허용준 (출처: 한국축구프로연맹)


상대에 따라 변화하는 변칙 전술을 선보일 김기동 감독과 자신만의 확고한 철학에 계속해서 색을 입혀갈 남기일 감독에 주목한다면 앞으로의 K리그를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지 않을까? 필자는 이렇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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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성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