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펩이 맨시티의 수적 우위를 만든 방법

오성윤 2023. 4. 14. 19:30

21세기 축구 전술 혁명의 중심이 된 두 혁명가, 펩 과르디올라와 토마스 투헬이 각각 맨시티와 바이에른 뮌헨의 감독으로서 챔피언스리그 무대에서 지략 대결을 펼쳤다. 투헬은 리그에서 다소 부진하는 경향을 보였으나 챔스 토너먼트에서만큼은 파리 생제르망을 제압하는 등 긍정적인 분위기를 이어간 율리안 나겔스만 감독의 대체자로서의 역할과 더불어 ‘트레블’이라는 구단의 궁극적 목표에 부응해야 한다는, 펩은 맨시티의 지휘봉을 잡은 이래 감독 커리어의 유일한 오점으로 평가 받는 챔스 징크스를 극복해내야 한다는 각각의 부담을 짊어진 채 경기에 돌입했다.

출처: 스카이스포츠


에티하드 스타디움 원정길에 나선 바이언은 맨시티의 측면을 공략하고자 했다. 빌드업 국면에서 바이언은 알폰소 데이비스를 왼쪽 측면 높은 지점에 배치하고 파바르를 후방 빌드업에 참여시킨 형태인 1-3-2-5 포메이션을 가동하였다. 이때 파바르는 측면 지향적인 포지셔닝을 통해 유동적으로 측면 전개에 가담하면서 바이언의 매끄러운 공수 전환을 도왔다.

빌드업 국면에서 전개 국면으로 전환되는 대부분의 상황에서 바이언은 1-2-2-4 시스템을 기조로 하여 키미히를 구심점으로 계속해서 볼을 순환시켰다. 볼의 순환에 있어서 투헬은 공격진의 전방 로테이션을 적극 활용했는데, 대표적으로 사네와 코망이 상호간의 지속적인 스위칭 움직임을 통해 전개 국면에서 우측과 좌측을 번갈아 담당하였으며 그나브리는 좌우 하프 스페이스를 공략함으로써 바이언이 원활하게 측면 공격을 풀어나올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후자의 경우 후방 우파메카노-키미히-더리흐트로 구성된 빌드업 대형에서부터 출발하는 다이렉트 패스가 상대의 전방 압박 라인 너머로 진출하기 위한 경유지로서 기능하기도 했다. 이는 최전방에서 팀에 여러 옵션을 제공해줄 수 있는 추포-모팅의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한 투헬 감독의 대응책이라고 볼 수 있다.

알폰소 데이비스는 베르나르두 실바를 고정시키고, 최전방으로 나선 그나브리는 측면으로 유동적으로 움직이며 연계


위 자료는 바이언이 공격진 사이 활발한 스위칭 움직임을 통해 공간을 창출하고자 한 단적인 예시 장면이다.

바이언은 키미히가 직접적인 전진 패스를 통해 공격 방향을 전환하거나 개인능력으로 볼을 운반할 수 있는 여건이 충분히 갖추어지지 않았을 시, 즉 후방 빌드업을 통해 키미히가 주로 위치하고 있는 우측 하프 스페이스 지역에서의 공간 확보에 실패할 경우 좌측 지향적인 포지셔닝을 취하는 고레츠카에게 볼을 연결함으로써 맨시티의 거센 전방 압박 강도를 경감하는 효과를 가져간다. 이때 고레츠카는 직접 볼을 운반하며 베르나르두 실바와 로드리의 시선을 끌게 되는데, 코망 또한 동시다발적으로 스톤스-아칸지-로드리로 구성된 삼각형 내부, 즉 맨시티의 두줄수비 라인 사이 공간으로 침투한다. 이렇게 코망과 고레츠카가 각자 두 명의 상대 선수를 고정시키면서 알폰소 데이비스는 아칸지와 1v1 구도를 형성하기 전까지 자유로운 상황을 맞이한다.

맨시티의 최후방 라인과 3선 라인 사이 공간으로 쇄도하는 코망과 넓은 공간을 활용할 수 있게 된 알폰소 데이비스


이처럼 알폰소 데이비스가 아칸지와의 1v1 대결 연출에 성공해냈을 경우 무시알라의 오프더볼 움직임이 빛을 발한다. 그나브리가 아케를, 코망이 라인 사이 공간에 대한 쇄도의 효과로써 후벵 디아스와 스톤스를 고정시키면서 발생한 아칸지의 블라인드 사이드를 향해 무시알라가 지원 움직임을 가져간다. 무시알라의 움직임으로 바이언은 알폰소 데이비스-고레츠카-무시알라가 삼각형을 형성하게 되고, 이 삼각형은 공격 인원이 증가한 바이언의 유기적인 스위칭 움직임의 결과로써 연속적인 성질을 띄기 때문에 바이언은 측면 삼각형을 통해 무수히 많은 공격 루트를 구상할 수 있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맨시티가 준비한 1-4-4-2 수비 시스템의 우측 과밀화가 성공적으로 유도될 시 삼각형의 고립을 방지하기 위해 반대 측면에 대기하고 있는 키미히를 경유한 방향 전환도 또다른 공격 옵션으로 작용이 가능하다.

순간적으로 아칸지가 허용한 뒷공간을 공략하는 무시알라


정통 스트라이커의 부재를 전방에서의 유연한 스위칭 플레이로 승화시키고자 한 투헬 감독의 전략은 맨시티 수비 시스템의 분열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했다. 투헬 감독의 의도대로 특정 구역 내에서 맨시티 수비 시스템의 밀집과 과밀화 유도에 성공하면서 방향 전환이라는 후속 작업으로까지의 연계를 잘 수행해내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박스 내부 구역에서 공격적인 영향력을 전혀 발휘하지 못하면서 상황을 마무리 짓는 데는 고전하는 면모를 보였다. 위 제시된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바이언의 박스 밖 슈팅에 대한 의존도는 현저히 높았다.

왼쪽이 맨시티, 우측이 바이언 (출처: WhoScored)


‘측면 공략’이라는 컨셉을 바탕으로 경기를 운영한 바이언, 이에 대응하기 위해 맨시티는 ‘수적 우위’에 초점을 맞췄다.

맨시티의 수적 우위는 후방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스톤스를 인버티드 풀백으로 활용함으로써 후방 3-2 빌드업 대형을 형성한 맨시티는 사네-그나브리-코망으로 구성된 공격진과 2선의 무시알라를 대동한 바이언의 전방압박 시스템에 비해 인원이 한 명 더 많은 5v4 수적 우위를 점했다. 상대 전방압박 인원보다 한 명이 더 많았기 때문에 맨시티는 상대의 견제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선수에게 더 많은 공간을 제공하고자 했고, 스톤스가 3선이 아닌 디아스-아칸지의 사이 공간으로 라인을 내리면서 후방 4-1 빌드업 대형을 형성했다. 수비라인을 구성하는 인원을 늘려 경기장을 넓게 사용해 양쪽 스토퍼로 기용된 아케와 아칸지가 측면에서 활발한 가담을 통해 공격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는 라인을 높게 가져가 더리흐트-우파메카노의 발밑 능력에 크게 의존하는 경향성을 띄고, 이와 같은 후방 빌드업 시스템으로 인해 잦은 빈도로 노출되는 수비 뒷공간을 의식하고 이를 안정화하기 위해 고레츠카의 전진 배치 지양 및 중앙 지역에 대한 방어 임무를 부여한 바이언의 새로운 빌드업 기조를 역이용하기도 했다. 지역 방어 임무를 부여받은 고레츠카는 아칸지가 전개 국면을 이끌어갈 때 맨시티의 우측에서 발생하는 패스 워크에 유연하게 반응하지 못하며 맨시티의 측면을 기점으로 한 공간 창출을 견제하지 못했는데, 이러한 고레츠카의 정적인 움직임 결과적으로 중원 비효율을 야기한 것이다.

위의 자료를 통해 맨시티가 바이언의 중원 비효율을 이끌어낸 방법에 대해 파악할 수 있다.

오른쪽 측면에서 프리맨이 된 아칸지는 높은 지역에서 베르나르두 실바-KDB와 함께 3v2 수적 우위 혹은 3v3 수적 동위를 이끌어내며 경기 내내 베르나르두 실바에게 고정된 알폰소 데이비스를 공략했다. 이때 KDB는 베르나르두 실바 혹은 알폰소 데이비스의 배후로 돌아들어가는 움직임으로 바이언 수비진을 끌어냈고, 베르나르두 실바는 알폰소 데이비스와의 1v1 구도를 수월하게 풀어 나올 수 있게 된다. 이는 또한 동료 선수가 아이솔레이션 상황에서 1v1 구도에 직면했을 때 배후로 돌아들어가면서 자신과 동료에게 2v2로 대응하던 상대 수비진의 미스 매치를 유도하는 대표팀에서의 오프더볼 움직임과 매우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

맨시티의 후방 수적 우위와 우측면 작업


위 자료에서 볼 수 있듯, 로드리의 전진과 KDB의 온더볼 능력을 통해 맨시티는 바이언의 중앙 과밀화를 유도하기도 했다. 이 상황에서 맨시티는 양쪽 측면에서 프리맨으로 대기하고 있는 그릴리시와 베르나르두 실바라는 선택지와 더불어 KDB에게 상대 센터백이 이끌림에 따라 발생한 뒷공간에 대한 홀란드의 침투 움직임을 지원하는 전진 패스라는 세 가지 옵션을 가지게 된다. 좌측면의 그릴리시가 볼의 소유권을 잡았을 때도 위와 같은 양상으로 상황이 전개되는데, 그릴리시는 안으로 접어들어와 바이언 수비진의 중앙 과밀화를 유도하여 홀란드의 침투 공간과 오른쪽 측면에 위치하는 베르나르두 실바의 아이솔레이션을 창출한다. 이 경우 그릴리시가 양쪽 방향 전환과 침투 패스라는 세 가지 이상의 옵션 중 최적의 선택지를 고를 수 있는 환경 마련을 위해 아케가 오버래핑 움직임을 취한다.

바이언의 중앙 밀집 유도한 맨시티


펩의 수싸움 전략은 실로 대단했다. 정돈된 1-4-4-2 전형의 수비 시스템을 바탕으로 바이언의 측면을 향한 공격을 차단하고 이를 오히려 역이용함으로써 바이언의 수비 조직을 붕괴시켰기 때문이다. 추포-모팅이 부상으로 인해 결장하는 등 바이언에게 닥친 악재의 영향도 분명 존재하지만, 승리에 기여한 투헬을 압도한 펩의 후방에서부터 시작하는 수적 우위의 비중 또한 지대하다고 하더라도 과언이 아니다. 조직력을 가다듬고 다시 한번 홈에서 맨시티를 맞이하는 투헬의 바이언이 ’알리안츠 아레나의 기적‘을 써내려갈지, 혹은 다시 한번 펩의 맨시티가 전술적으로 바이언을 압도할지는 8강 2차전 경기 주여 관전포인트로써 주목할 필요가 있다.





*모든 것은 제 사견이며 글의 구조적 안정감을 위해 제 생각임을 밝히지 않은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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