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23 시즌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2002/03 시즌을 마지막으로 단 한 번도 성사되지 않았던 유럽대항전 4강 ‘데르비 델라 마돈니나’가 펼쳐졌다. 2승 2무의 우세한 유럽대항전 토너먼트 전적을 기록한 AC 밀란은 인테르의 천적으로서 20년만에 형제와 맞붙게 됐다. 적은 실점을 목적으로 한 수비적인 경기 운영을 컨셉으로 하여 차례대로 토트넘, 나폴리를 꺾고 오랜만에 챔스 4강 무대를 밟은 AC 밀란은 역시나 신중하고 안정적인 스탠스로 실리적인 축구를 표방하고자 했으나, 의도했던 바와 반대로 10분만에 두 골을 헌납하며 힘을 쓰지 못하고 인테르의 축구를 허용했다.
원정팀의 입장에서 일찍이 승기를 잡은 인테르는 AC 밀란의 수비적 스탠스를 역이용했다. 수비라인의 높낮이를 소극적으로 설정한 AC 밀란의 경기 특징에 대응하여 강한 전방압박을 구사하기보단 압박 기준점 자체를 낮은 위치로 조정하였고, 스스로 전진을 제한한 상대의 포백에 대한 압박 강도를 의도적으로 낮게 가져감으로써 실질적 수적 우위를 점하고자 했다. 이는 곧 인테르가 상대 포백을 제외한 나머지 플레이어를 수적으로 압도하여 그들의 전개 과정을 철저히 통제 및 차단하고자 했음을 의미하는데, 인테르의 이른 득점은 그들의 전술적 의도가 더욱 경기 중에 나타날 수 있게 했다.
그렇다면 우선 인테르의 득점 장면을 이끌어 낸 후방 빌드업 시스템에 대해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인테르는 디펜시브 써드에서 후방 빌드업을 전개할 시 볼 컨트롤과 패싱에 장점이 있는 GK 오나나를 적극 활용하여 전방압박을 통해 인테르의 축구를 통제하고자 한 AC 밀란에게 실질적 수적 우위를 점하는 데 주력했다. 유동적인 백스리 구축을 지시하는 등 GK 오나나를 마치 한 명의 CB으로 간주하여 순간적으로 11명의 필드 플레이어로 인-포제션 국면을 전개한 것인데, 이러한 선수 활용에는 1차 목적과 2차 목적이 있다.
1차 목적은 디펜시브 써드에서의 과밀화 유도이다. 인테르는 디펜시브 써드에서 상대의 과밀화를 형성하기 위한 전제 조건인 상대의 전방압박 움직임을 유인하기 위해 후방으로의 백패스를 빈번히 시도함으로써 반복적으로 재정비하는 모습을 보였고, 세밀한 패스 전개에 집착하지 않고 LS 제코/RS 라우타로에게 다이렉트한 패스를 연결했다. 최대한 깊은 구역에서 볼을 점유하고자 한 인테르는 디펜시브 써드에서 후방 빌드업을 전개하는 경우 GK 오나나를 포함하여 3.2.4.2 대형을 형성했다.
이러한 시스템 하에서 CCB 아체르비는 주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CCB 아체르비는 주로 후방 빌드업에 가담하는 DM 찰하놀루와 함께 3선을 구성했으나 GK 오나나의 적극성과 RCB 다르미안의 움직임에 따라 여러 방면으로 포지셔닝을 가져가며 팀의 게임 모델을 더욱 완성도 있게 만들었다.
CCB 아체르비가 DM 찰하놀루와 함께 3선을 이룰 때 인테르는 중앙에서 수적 우위를 점할 수 있다. LCM 바렐라가 RDM 크루니치를, RCM 미키타리안이 LDM 토날리를 고정시킴으로써 CCB 아체르비를 향한 ST 지루의 전방압박을 함께 2v1 수적 우위를 이루는 DM 찰하놀루를 통해 분산시킬 수 있게 된다. RM 브라힘이 가담하더라도 측면 선택지에 대해 자유로웠는데, 이렇게 중원에서 수적인 우위 내지 동위를 점한 인테르는 GK 오나나까지 후방 빌드업에 적극적으로 가담시킴으로써 AC 밀란의 맨 마킹을 더욱 어수선하게 만들었으며, 측면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데 성공한다면 프리맨이 된 LCB 바스토니/RCB 다르미안은 수직적인 다이렉트 패스를 통해 측면으로 빠져나온 LS 제코에게 볼을 전진시킨다. 시공간적으로 여유롭다면 CCB 아체르비 또는 DM 찰하놀루가 직접 볼을 측면으로 투입하기도 한다.
인테르는 디펜시브 써드에서 후방 빌드업을 전개할 시 2ST를 구조적으로 낮게 배치했는데, 이는 낮은 수비라인의 유지를 통해 ’대기하는‘ 수비 동작을 펼치는 AC 밀란의 수비진을 이용한 것이다. 볼 전진에 성공한 경우 LS 제코와 RS 라우타로는 순간적으로 스프린트를 시작하는데, 약속된 플레이를 통해 상대보다 스프린트의 시작 시점 자체를 빠르게 가져가 상대 수비라인에 균열을 내는 것이다. LS 제코가 측면으로 빠지면 그때 발생하는 하프 스페이스 공간으로 LWB 디마르코/RWB 둠프리스가 쇄도하고, RS 라우타로도 함께 전방 침투하며 상대 수비진과 1v1 구도로 활용할 수 있는 횡공간을 더 넓고 더 많이 차지한 유리한 상태에서 대응하는 등의 패턴 플레이로 상대의 수비 시스템을 붕괴시켰다.
인테르가 백스리가 아닌 CCB 아체르비를 수비라인에 위치시켜 정상적인 포백으로 시스템을 변환하여 후방 빌드업을 전개할 때는 크게 두 가지 양상이 나타난다.
첫 번째 양상은 GK 오나나를 포함하여 포백을 형성하는 경우인데, CCB 아체르비는 이러한 구조에서 마치 LB처럼 기용되는 LCB 바스토니가 볼 방출을 통한 국면 전환을 더욱 쉽게 행할 수 있도록 상대의 맨 마킹을 분산시킨다. 반대로 CCB 아체르비가 GK 오나나의 우측에 배치되며 RCB 다르미안이 마치 RB처럼 움직임을 가져갈 수 있도록 포지셔닝을 가져가기도 한다. 이때 LWB 디마르코와 RWB 둠프리스는 인테르의 효율적 선수 활용과 실질적 수적 우위를 통해 프리맨이 된다. 미들 써드에서 GK 오나나를 포함시키지 않으면서 포백을 형성한다는 두 번째 양상에서 인테르는 중원을 거치지 않고 최전방으로 다이렉트하게 연결하는데, 미들 써드에서의 다이렉트 패스를 활용한 접근법은 상대가 진열을 갖춘 후방 빌드업 국면보단 쇄도할 공간이 상대적으로 많이 발생하는 수공전환 국면에서 더욱 효과적인 모습이었다.
인테르가 구사한 후방 빌드업의 2차적 목표, 앞서 나열한 실질적 수적 우위를 기반으로 한 상대의 과밀화 유도 과정과 이를 뒷받침하는 2ST의 궁극적 목표는 바로 LWB 디마르코와 RWB 둠프리스의 공격력 극대화이다.
기본적으로 상대 공격진보다 많은 숫자를 유지하는 백파이브라는 구조적 기반과 더불어 종적으로 많은 활동반경을 가져가는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 롤을 수행한 DM 찰하놀루의 수비 가담 움직임을 통해 LWB 디마르코와 RWB 둠프리스를 전진시킬 수 있었던 인테르는 아래 제시된 자료와 같이 미드필더의 밀집적 배치를 통해 상대를 과밀화시키는 데 성공하면 볼이 존재하는 측면의 WB을 안으로 들어오게 하여 RB 칼라브리아/LB 테오를 중앙으로 유인했다. LWB 디마르코와 RWB 둠프리스는 이때 발생하는 AC 밀란의 측면 수비 뒷공간을 공략하였으며 이때 CCB 아체르비는 후방에 머무르는 것이 아닌 볼이 있는 곳으로 전진하여 ST 지루와 경합해줌으로써 인테르가 볼의 소유권을 획득할 확률을 높인다.
이를 통해 인테르는 후방 빌드업 대형을 통해 상대 미드필더를 밀집시키며, 세밀한 패스 워크가 아닌 다소 투박하고 수직적인 다이렉트 패스를 구사함으로써 상대의 시선과 위치선정을 더욱 볼에 집중시켜 LWB 디마르코와 RWB 둠프리스가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을 더욱 효율적으로 제공하고자 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더불어 상술한 LS 제코의 측면 움직임이 상대 수비를 끌어들여 LWB 디마르코를 더욱 자유롭게 하는 장면은 경기 중 잦은 빈도로 연출되었다.
한편 아웃-포제션 상황에서 인테르는 압박 기준점을 낮게 가져가고 중원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였다. 1.4.2.2.2 전형으로 전개 국면을 풀어나가는 AC 밀란의 포백 중 공격 관여도를 높게 가져가지 않는 2CB에 대한 압박 강도는 줄이고, AC 밀란의 볼 운반과 전개 방향 전환을 행하는 주체인 3선을 통제했다. 이런 식으로 AC 밀란이 볼을 점유하고 국면을 전개할 때 인테르는 11명의 선수를 모두 수비에 가담시켜 수비라인의 공격적 활용을 최대한 지양한 AC 밀란을 상대로 ‘대기하는’ 수비를 펼쳤으며 이러한 수비 컨셉의 핵심인 ’액티브한 수비 태세‘였다.
우선 인테르의 수비 구조에 대해 더욱 세부적으로 알아보자. 2ST와 3MF가 플랫한 3-2 대형의 하이 블록을 형성하여 LDM 토날리와 RDM 크루니치에게 수적 우위를 점한다. 최전방에서 필연적으로 상대 2CB를 견제해야만 했던 LS 제코와 RS 라우타로는 AC 밀란의 후방 빌드업을 측면으로 유도했다. RWB 둠프리스와 LWB 디마르코의 경우 각각 LM 살레마케어스와 RM 브라힘을 대인 방어했다. RM 브라힘과 LM 살레마케어스가 각각 마크맨을 끌고 높은 위치에 포진해있다보니 RB 칼라브리아와 LB 테오는 상대적으로 넓은 공간을 활용할 수 있게 되는데, 인테르의 하이 블록은 볼이 존재하는 측면에 위치한 MF가 라인을 끌어올려 2-3 수비 대형을 형성함으로써 상대 RB/LB에 대한 직접적 압박 및 중원이 한 명 줄어들면서 상대 2DM에게 볼이 연결되었을 시 질적으로 불리해지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2DM으로의 대각선 패스 각도도 주시하며 함께 차단했다.
LB/RB에 대한 견제로 측면으로 유도되어 중원에 숫자가 적어짐에 따라 문제가 발생한 인테르는 상대보다 한 명이 더 많다는 백파이브의 수적 이점을 활용하였다. RB 둠프리스를 전진된 위치에서 수비적인 임무를 수행하게 하였으며 포백으로의 변환 이후 DM 찰하놀루의 라인을 내려 포백의 앞을 보호하도록 했으며, DM 찰하놀루의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RS 라우타로 혹은 LS 제코는 상대 2DM 압박에 치중하였다.
특히 변칙적으로 2ST 중 한 명이 중원 압박에 가담한 수비 시스템에서 인테르는 역습을 전개하기에 더욱 용이했다. 아래 제시된 이미지와 같이, RWB 둠프리스의 전진으로 인해 형성된 포백 변환 체제에서 RB처럼 기용된 RCB 다르미안의 볼 커팅을 받아주기 위해 내려온 LS 제코는 LCB 토모리와 LB 테오를 끌고 내려왔으며, 이때 RCB 카예르는 순간적으로 얇아진 중원을 대신하여 전진하는 LCM 바렐라-침투하는 LS 라우타로와 2v1을 맞이한다. 수비 국면에서의 액티브한 태세를 유지하며 결국 볼 탈취 이후 적절한 시점에 스프린트를 성공한 RCM 미키타리안과 LWB 디마르코는 또다른 선택지로써 기능한다.
이렇게 인테르는 수적 압도로써 중앙을 통제하고 측면에 공간을 의도적으로 열어주었다. 이렇게 열려진 공간으로 AC 밀란이 볼을 전개할 시 기민하게 반응하여 볼을 탈취한 후 역습을 전개하는 방식으로 AC 밀란을 괴롭힌 인테르의 전략을 엿볼 수 있었다.
20년만에 치러진 챔피언스리그 4강전 밀란 더비의 승리의 여신은 인테르의 손을 들어주었다. 전체적으로 경기 주도권은 내주었으나, 이른 득점을 통해 오히려 비 점유 국면에서 그들의 철학을 완전히 드러내며 AC 밀란의 축구를 성공적으로 방해했다. 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 첫 밀란 더비 승리라는 기분 좋은 기록도 남겼기에 더욱 그 의미가 남달랐던 더비 매치였다.
데르비 델라 마돈니나 역대 최다 득점자 셰브첸코가 이끌었던 AC 밀란의 최 전방과 코르도바-마테라치-칸나바로가 형성한 통곡의 벽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당시의 스쿼드와 명성에 비해 다소 초라한 더비 매치임은 사실이나, 두 팀 모두 비슷한 시기에 암흑기를 떨쳐내고 유럽대항전 토너먼트에서 만났다는 사실을 미루어볼 때 결과를 떠나 올드팬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한 경기였다.
하지만 오랜만의 향수에 흠뻑 젖기도 잠시, AS 로마의 유로파리그 상승세와 유벤투스의 승점 복구로 인해 더욱 혼란스러워진 리그 순위표 등 당장 현실적인 목표에 직면해있는 둘의 환경적 요인을 고려했을 때 둘은 빅이어 획득이 절실하며, 이를 위해 필연적으로 피 튀기는 형제 다툼을 벌여야만 한다. 하파엘 레앙의 부상 복귀와 인테르 팬들이 더욱 많은 좌석을 차지할 예정인 산시로의 뒤바뀐 기류 등 1차전 못지 않게 흥미진진한 대결구도를 형성할 둘의 운명이 그저 기대될 따름이다.
*모든 것은 제 사견이며 글의 구조적 안정감을 위해 제 생각임을 밝히지 않은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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