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축구의 22/23 시즌은 수비형 미드필더를 꿈꾸고 동경하는 이들에게 의미 있는 해로 기록되었다. 8번 롤로의 보직 변경이 예고된 바이언의 요슈아 키미히는 다소 부진세를 겪은 팀을 리그 우승으로 이끌며 마지막으로 6번 롤을 수행할 22/23 시즌을 하얗게 불태웠고, 펩 감독의 선택에 따라 포지션 변경을 감행한 스톤스와 유나이티드에 새 둥지를 튼 카세미루는 모두 맨체스터에서 최고의 활약을 남겼다.
팀 내 기대치에 비례한 성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최우수 선수 반열에 이름을 올린 이들의 활약은 대단했다. 하지만 이들은 최고의 시즌을 보냈음에도 그들의 포지션에서 최고로 평가받지 못했다. ‘맨체스터의 주인’ 로드리가 그 이유다. 구단 사상 최초의 트레블을 견인하는 등 맨체스터 시티가 새로이 써 내려가는 역사의 주인공으로서 군림한 로드리의 활약은 키미히, 스톤스 등 쟁쟁한 경쟁자들 사이에서도 단연 독보적이었다.
그렇다면 로드리는 어떻게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세계의 정점에 다다를 수 있었는가, 그 이유에 대해 낱낱이 파헤쳐 보고자 한다.
로드리가 펩 과르디올라의 휘하에서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중 하나로 거듭날 수 있었던 이유에는 그의 출전시간이 기반해 있다. 로드리는 페르난지뉴의 대체자원으로 펩 과르디올라에게 낙점을 받아 맨체스터 시티로 자리를 옮긴 이후에도 라리가에서 그랬듯이 매 시즌 한계를 뛰어넘는 출전시간을 기록하였다. 2022/23 시즌도 마찬가지로 프리미어리그에 한하여 경기당 평균 81분가량 동안 총 36경기에 출전하면서 여지없이 '철강왕'의 면모를 드러냈다. 이 결과로써 34번의 선발출장, 2번의 교체출장으로 총 2921분 동안 그라운드를 누빈 로드리는 총 3150분을 소화한 GK 에데르송을 제외한 필드 플레이어 중 부동의 팀 내 출전시간 선두에 위치해 있다.
로드리의 출전 기록은 키어런 트리피어와 부카요 사카 등 리그 모든 라운드, 즉 38 라운드에 전부 출전한 선수들이 즐비하기에 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빈약하게 비추어질 수 있다. 하지만 맨체스터 시티가 트레블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프리미어리그와 함께 병행한 챔피언스리그와 FA컵 일정도 함께 정상적으로 소화하면서 55 경기에 육박하는 경기를 치렀으며 시즌중 A매치 기간 동안 스페인 대표팀에 계속해서 차출되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로드리가 한 시즌 장기 레이스를 보내면서 부상과 기복 없이 그라운드 위에서 그의 존재감을 드러내며 펩 과르디올라가 쌓은 공든 탑이 무너지지 않도록 묵묵히 지탱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는 로드리가 그라운드 위에서 몇 경기를 뛰었고, 또 각 경기마다 평균 몇 분을 뛰었는지에 대한 절대적인 숫자 지표와 더불어 경기당 세부지표에 기반하여 그의 활동량에 대해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펩 과르디올라는 트레블을 향한 장기전에 대비하기 위해 선수들의 체력 안배와 전술적 유연성을 위해 베스트 일레븐에 포함되는 주전 선수들과 비주전 선수들의 적절한 시간분배와 입지적 융화를 추구했는데, 로드리는 이러한 펩 과르디올라가 가동하는 대부분의 로테이션 대상에서 제외되며 체력적 이득을 취하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활동량에 관해 매 경기 우수한 세부 지표를 남겼다.
로드리의 활동량에 관한 통계적 근거는 대표적으로 로드리의 22/23 챔피언스리그 세부 지표에서 확인할 수 있다. 로드리는 조별리그와 토너먼트를 포함하여 챔피언스리그에서 총 12경기를 소화했는데, 평균 시속 30km라는 준수한 스피드를 바탕으로 하여 경기당 평균 11km의 총합 134km라는 넓은 범위를 커버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22/23 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에서 가장 화제가 되었던 매치인 바이에른 뮌헨과의 경기에서는 1차전 13.2km, 2차전 12.4km라는 왕성한 활동량을 드러내는 등 팀의 산소 탱크로서 기능했다.
일명 '라 파우자'라고 일컬어지는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갖춰야 할 조율 능력도 출중하다. 토마스 파티, 파비뉴 등 동포지션 경쟁자들에 비하더라도 굉장히 안정적인 경기 조율 및 운영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인데, 자기 진영만이 아니라 상대 진영에서의 경기 조율에도 여유로움을 내비치는 등 상대 진영 점유율이 36%로 리그 최고를 기록하고 있는 맨체스터 시티의 경기 운영 스타일과 이를 가능하게 하는 펩 과르디올라의 게임 모델의 중심축으로 자리매김하였다.
그 근거로써 그의 패스 통계를 들 수 있는데, 로드리는 1246회의 자기 진영 패스와 1475회의 상대 진영 패스를 기록하면서 각각 93%, 90%가량의 패스 성공률을 기록했다. 위의 두 지표가 아주 근소한 차이만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을 미루어볼 때 로드리는 위치에 얽매이지 않고 그의 능력을 발휘하며, 실제로 그의 오픈 플레이 패스 지역 분포도는 그가 6번의 위치에서 자기 진영과 상대 진영을 넘나들며 경기 운영에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비단 중원만이 아니라 PA 내부에서 파이널 써드에 걸친 로드리의 전방위적인 경기 관여도도 함께 엿볼 수 있다.
그렇다면 각각 자기진영과 상대진영에서 로드리는 팀에 어떠한 방식으로 도움을 줄까?
자기 진영에서 로드리는 주로 LCB 아케-CCB 디아스-RCB 워커/아칸지로 구성되는 백스리와 함께 후방 빌드업 국면을 주도하면서 상대 선수를 자신에게 끌어모으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후 공간에 대한 드리블을 통해 볼을 전진시킴으로써 상대 1선의 전방압박을 유도하고, 상대 선수가 충분히 유인됐다면 상대 전방압박의 경로를 패스를 통해 이동시킴으로써 맨체스터 시티의 3선에 공간을 창출한다. 해당 공간은 지원 움직임을 위해 내려온 동료가 활용하게 하거나 자신의 오프더볼을 통해 직접 활용한다.
맨체스터 시티는 로드리가 상대의 전방압박을 유도함으로써 발생하는 공간을 활용하기 위해 기존의 로드리-스톤스가 3선을 형성한 3-2 후방 대형에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변화를 줌으로써 3-1 후방 대형 기반의 1.3.1.5.1 시스템을 구축한 이후 전방에서 수적 우위를 점하는 등의 변칙 전술을 선보였다. 실제로 맨체스터 시티는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인테르 밀란과의 경기에서도 인테르 밀란의 수비 블록을 타개하기 위해 RDM으로 나선 스톤스를 3선에 고정시키지 않고 2선에 위치시키는 등 로드리의 안정적인 경기 운영에서 파생된 여러 상황을 최대로 활용하고자 했다.
아래의 장면 예시를 통해 자기 진영에서 볼을 잡았을 시 로드리에게 배정된 역할을 파악할 수 있다. 급하게 패스 전개를 하지 않고 속임 동작을 통해 상대 1선의 전방압박을 유도한 로드리는 LCB 아케에게 볼을 내주었고, 지역 방어를 기반으로 한 사우스햄튼의 압박 체계가 순간적으로 붕괴되자 LAM 귄도안은 순간적으로 프리맨이 되었다. 사우스햄튼은 이 경기 맨체스터 시티를 상대로 1.4.2.4 전형의 미들 블록을 세워 맨체스터 시티의 후방 빌드업을 통제하고자 했으나 상대를 유인하는 것에 초점을 둔 로드리의 후방 빌드업 운영 컨셉에 의해 계속적으로 공간을 허용하며 4-1 대패로 무너졌다.
상대 진영에서 포지셔닝을 가져가거나 직접 볼을 잡았을 때 로드리는 자기 진영에서와 마찬가지로 맨체스터 시티가 전개하는 공격의 발원지로서의 공통적인 역할을 부여받는다. 하지만 볼의 종적인 방향 설정에 있어서 자기 진영에서 볼을 잡고 포지셔닝을 취하는 경우와는 달리 볼을 전방으로 투입 및 공급하는 데 더욱 중점을 둔다. 경기의 전반적인 템포를 조절하고 안정성을 우선으로 하여 패스 방향을 설정한 자기 진영에서의 스탠스와의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로드리의 전진 패스 공급 능력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기능을 하는 요소는 바로 그의 넓은 시야다. 특히 공간을 향해 움직임을 가져가는 동료 선수에 대한 시야를 확보가 뛰어난데, 이러한 로드리의 시야적인 탁월함이 펩 과르디올라가 구상한 게임 모델에 이식되면서 맨체스터 시티는 더욱 완성도 높은 축구를 구사할 수 있었다. 맨체스터 시티의 유기적인 스위칭 플레이가 계속해서 공간을 향하는 선수들의 움직임을 촉발하였고, 이에 따라 로드리의 시야 확보 및 즉각적인 패스 조치가 더욱 수월해지면서 상대진영에서의 볼의 순환도 활발하게 일어난 것이다.
아래의 장면 예시가 로드리를 시작으로 한 맨체스터 시티의 볼 전개의 단적인 예시다. 로드리는 상대진영에서 볼을 잡은 후 즉각적으로 자신의 몸 방향 및 시선을 상대진영으로 설정하였고, 지체하지 않고 공간을 향해 내려오는 ST 훌리안 알바레즈에게 상대 선수 3명을 단번에 패킹하는 전진패스를 투입하였다. 리버풀의 수비수가 ST 훌리안 알바레즈를 향해 올라가면서 리버풀의 수비라인은 라인 설정에 어려움을 겪었고, 이에 따라 RAM KDB는 우측으로 공격 방향을 설정할 시공간적 여유를 확보할 수 있었다.
이처럼 넓은 시야와 빠른 판단력을 무기로 장착한 로드리는 많은 선택지를 얻는다. 우선 여유로운 볼 운반으로 상대 선수의 압박에서 벗어난 이후 상대를 끌고 다니면서 프리맨이 된 동료에게 패스를 연결하거나 측면 전환을 통해 상대의 측면 과밀화를 유도할 수 있다. 혹은 자신에게 충분한 공간이 확보되었다면, 대각선 방향의 전진 패스 혹은 롱볼을 활용한 과감한 방향 전환이라는 선택지를 가질 수 있다. 오프더볼 시에는 잠재적으로 자신보다 합리적인 패스 선택지가 있다면 자신이 직접 전방으로 쇄도함으로써 상대 선수를 끌고 가 3선에 공간을 창출하기도 한다.
로드리는 비단 여러 선택지를 확보할 뿐만 아니라 각각의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지를 판단하는 데 소요하는 시간이 매우 짧으며, 빠른 패스 전개보단 적절한 템포 조절이 필요한 경우에는 직접 볼을 운반하거나 상대의 압박을 기다리면서 상황을 창출하기에 최적의 환경을 조성하는 것에 능하다. 다시 말해, 로드리는 맨체스터 시티가 자신들의 게임 모델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최고의 축구를 구사할 수 있도록 '조율자'의 역할을 최대로 수행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로드리는 경기 조율과 운영을 위해 자기 진영과 상대진영을 오가면서 가시적으로 6회의 어시스트를 기록하였고, 32회의 기회 창출과 5회의 보조 어시스트라는 세부 지표를 남기는 등 팀의 공격 국면에 적지 않게 관여하였다. 그리고 로드리가 공격적으로도 팀에 큰 기여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높은 지역에서의 수비 가담에 있다. 로드리는 팀의 아웃 포제션 국면에서 2선과 3선을 오가며 맨체스터 시티의 수비전술에 활용되었는데, 펩 과르디올라의 시스템적 지원 하에서 2선으로 과감히 점프하여 상대의 볼을 탈취하려는 움직임을 자주 보였다.
아래의 장면에서 로드리는 파이널 써드에서 수비 가담을 통해 뉴캐슬의 볼을 탈취한 이후 오른쪽 횡공간을 활용하여 공격 국면을 전개했다. 이 경기 맨체스터 시티는 1.4.2.3.1 포메이션으로 나섰으며 상대의 역습을 저지하기 위해 로드리와 함께 LCB 후벵 디아스가 역습 저지선을 구축했다. 아래의 장면에서도 마찬가지로 LCB 후벵 디아스가 로드리와 함께 수비 가담을 펼치고 있다. 로드리가 부재한 맨체스터 시티의 후방 대형에는 LDM 귄도안이 참여하여 최후방 저지선을 형성했음을 볼 수 있다.
이렇듯 맨체스터 시티는 선수간의 유동적인 위치선정을 통해 로드리를 포함한 타 선수들이 자신의 위치에 국한되지 않는 자유롭고 상황에 맞는 유동적인 포지셔닝을 취하도록 하는 시스템을 마련했다. 스톤스 등이 로드리의 공격 가담의 부담을 줄여주기도 했고, 반대로 로드리가 타 미드필더들의 공격 가담을 자유롭게 하는 등 서로 상호작용했다. 이러한 시스템적 지원 하에서 파생된 여러 상황에서 로드리는 공격 가담의 순간도 역시 맞이했으며 공수 양면에서 우수한 세부 지표를 완성할 수 있었다.
로드리는 22/23 시즌 수비형 미드필더로서의 덕목을 완전히 갖춘 이데아적인 면모를 보였고, 그 이상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자신의 커리어에 프리미어리그 트로피와 FA컵 트로피를 추가하였고, 마지막으로 챔피언스리그 트로피로 한 시즌을 마무리 지으면서 잉글랜드 무대 뿐만 아니라 유럽 축구까지 석권하였다. 그가 22/23 시즌 세계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군림하고 있다는 근거다.
로드리는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 바이에른 뮌헨전 환상적인 선제골을 기록하는 등 팬들의 뇌리에 자신의 존재를 새겼고, 일각에서는 22/23 시즌 맨체스터 시티와 함께 치열한 우승 경쟁을 펼친 아스날이 결국 레이스에서 탈락하게 된 큰 이유 중 하나가 로드리와 같은 선수의 부재라고 평가받는 등 로드리의 존재감은 대단했다.
다음 23/24 시즌도 역시 트레블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아 레이스를 펼칠 맨체스터 시티의 베스트 일레븐에서 로드리의 입지는 확고할 전망이다. 맨체스터 시티 5년차에 접어든 로드리가 다음 시즌 새로운 전술에서 새로운 동료들과 합을 맞추며 어떠한 활약상을 선보일지 그 미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모든 것은 제 사견이며 글의 구조적 안정감을 위해 제 생각임을 밝히지 않은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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