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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 자국에서 개최되는 유로 2024, 전차군단의 부활의 무대가 될 수 있을까

오성윤 2024. 6. 11. 20:42

1. 서론

 
유로 2016 4강 탈락, 2018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 유로 2020 16강 탈락, 2022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 이는 '전차군단'이라고도 불리며 전 세계를 호령한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의 2014 월드컵 이후 메이저 대회 성적이다. 그들은 상당히 긴 시간 동안 전례 없는 부진을 겪고 있으며, 이로 인해 최상위권에서의 첨예한 순위 대립을 하던 피파랭킹은 16위로 곤두박질쳤다.

2018 월드컵 이후 전차군단의 내리막길은 본격화되었다. 독일 축구는 장기 집권을 통해 전차군단의 영광의 시대를 이끌었으나 그 끝이 좋지 않았던 요아힘 뢰브 감독을 경질하는 선택을 내렸고, 그 후임으로 감독으로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한 바 있는 한지 플릭을 선임했다. 
 

독일 축구의 충격적인 월드컵 조별탈락.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이는 적절한 판단으로 보였으나 지난 월드컵에 이은 2022 월드컵 조별예선 탈락으로 독일 축구의 체면만 구기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일본과의 친선 경기에서는 4-1의 충격적인 대패를 당했으며, 이에 대한 책임을 물기 위해 한지 플릭은 다음 경기를 3일 앞두고 독일 대표팀 사령탑에서 해임되었다.

이처럼 한지 플릭 감독은 위기에 빠진 팀을 구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깊은 수렁에 빠트렸고, 예상치 못한 대실패 이후 독일 축구는 루디 푈러 임시 감독 체제로 전환해 다음 감독을 모색했다. 이후 무직 상태였던 율리안 나겔스만 감독과 빠르게 접촉해 그를 다음 사령탑으로 임명했다.
 

월드컵에 이어 일본에게 2연패를 당하며 충격에 빠진 독일 축구.

 
빠르게 체제를 전환한 독일은 나겔스만 부임 이후 1승 1무 2패라는 좋지 않은 성적을 기록하며 또다시 아픔을 반복하는 듯했으나, 3월 A매치에서 뛰어난 조직력과 잘 다듬어진 게임모델을 선보이며 프랑스와 네덜란드를 꺾었고, 유로 2024 직전 우크라이나 및 그리스와의 친선 경기에서도 그 기세를 유지하며 독일 축구의 화려한 부활을 기대하게끔 만들었다.
 
이처럼 독일 축구는 길고 긴 어려움 끝에 과거의 영광을 회복할 채비를 끝마쳤고, 그들의 다음 행선지인 유로 2024는 자국에서 개최되는 만큼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릴 최적의 무대도 마련되었다. 독일 축구팬들이 그동안의 기다림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을지, 나겔스만 감독 및 선수단은 이를 갈고닦은 만큼의 훌륭한 성적으로 그동안의 부진을 훌훌 털어버릴 수 있을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훌륭한 조직력을 프랑스를 완파한 독일 대표팀.

 


 

2. 선수단 및 시스템

 
유로 2024 본선에 나설 독일 국가대표팀 선수단은 총 26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예비 명단에 차출되었던 알렉산더 뉘벨이 탈락했고, 안토니오 뤼디거와 리로이 자네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잠시 대표팀과 동행할 기회를 얻으며 우크라이나전 벤치에 앉은 로코 라이츠와 브라얀 그루다 역시 나겔스만 감독의 눈에 들지 못하며 뉘벨을 제외한 26인이 유로 2024 본선 무대를 밟게 됐다.

유로 2024에 나설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명단


골키퍼는 앞서 언급했 듯 알렉산더 뉘벨이 빠지며 쓰리 키퍼 체제로 운영된다. 퍼스트로 마누엘 노이어, 세컨드로 테어슈테겐, 써드로 올리버 바우만이 기용될 전망이다. 셋 모두 최고의 폼은 아니지만 선방 면에서 준수하며, 높은 지역 혹은 상대 압박 속에서 볼을 다루는 데에도 능해 기회가 주어진다면 적절한 활약을 해낼 수 있다.

여담으로 독일의 퍼스트 키퍼 경쟁은 꽤 치열했다. 노이어가 부상으로 대표팀에 소집되지 않은 3월 A매치에서는 테어슈테겐이 독일의 퍼스트 골리로 올라섰다. 하지만 유로 직전 6월 A매치에 노이어가 대표팀에 복귀하자 둘의 위치가 원상태로 돌아가며 노이어가 골문을, 테어슈테겐이 다시 벤치를 지키게 됐다. 또다시 노이어라는 그림자에 가린 테어슈테겐은 인터뷰를 통해 메이저 대회 주전 기회를 잃은 충격에 대해 직접 설명하기도 했다.

노이어라는 벽을 결국 뚫어내지 못한 테어슈테겐


중앙 수비의 경우 소속팀에서 활약상이 뛰어난 요나탄 타, 안토니오 뤼디거, 니코 슐로터벡 등이 차출되었다. 측면 수비는 주전조인 막시밀라인 미텔슈타트와 요슈아 키미히를 필두로 라이프치히의 양쪽 수비지원이 백업을 담당한다.

뤼디거와 타가 주전 조합으로 호흡을 맞출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발데마르 안톤과 슐로터벡, 로빈 코흐 모두 소속팀에서 안정적인 모습을 선보였으며 뤼디거와 타의 백업으로서 적절히 역할을 수행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중앙 수비의 뎁스와 조합, 퀄리티 모두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리가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인 선수들로 벤치를 채웠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시즌 최고의 퍼포먼스를 선보인 마츠 후멜스가 최종 명단은 물론 예비 명단에도 발탁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분명 아쉬운 점이다.

노이어, 크로스, 귄도안, 뮐러라는 메이저 대회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들이 각각의 포지션에 포진하여 있지만, 최후방 수비의 경우 후멜스와 같이 노련함과 경험을 통해 수비라인은 물론 전체 선수단을 이끌어줄 리더가 없기 때문에 독일이 대회에서 아쉬운 면모를 보인다면 이에 관한 질책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전차군단의 중앙 수비 듀오, 안토니오 뤼디거와 요나탄 타



미드필더진의 경우 전방 자원과 후방 자원의 분리를 추구하는 나겔스만 감독의 성향 하에서 3선과 2선의 역할이 명확하게 구분된다. 3선은 로베르트 안드리히, 토니 크로스, 파스칼 그로스, 알렉산다르 파블로비치가, 2선은 플로리안 비르츠, 자말 무시알라, 일카인 귄도안, 크리스 퓌리히, 리로이 자네로 나눌 수 있다. 
 
3선에서는 상대 수비블록을 파괴하기 위한 볼 받는 포지셔닝에는 정평이 나있는 그로스, 상대 미들라인 사이로 하이 퀄리티의 전진패스를 찔러줄 수 있는 안드리히와 크로스가 후방에서 얼마나 안정성 있는 모습을 보이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2선의 경우 개인 능력이 출중하며 상대 포켓에서의 하프턴 및 연계 플레이에 강점을 보이는 무시알라, 비르츠 등이 상대를 얼마나 흔드는지가 독일이 '승리'를 거머쥘 수 있게 하는 주요 관건이다.
 
또한 무시알라와 비르츠는 소속팀에서도 2선에 머무르지 않고 측면으로 빠지거나 3선 미드필더 근처로 내려가 수적 우위를 형성하거나 직접 볼을 운반하는 움직임을 적극적으로 가져갔기 때문에 독일의 전개 상황이 답답할 경우 도움이 될 수 있다. 기본적으로 1-3-1-5-1 형태의 적은 후방 자원과 많은 전방 자원을 바탕으로 경기를 풀어나가고자 하는 독일이기 때문에 두 선수의 지원 움직임을 통해 상대 미들라인에 균열을 야기한 이후 최소 4명이 포진해 있는 포켓 공간으로 전진패스를 찔러주는 형식처럼 말이다. 
 

독일의 현재이자 미래, 플로리안 비르츠와 자말 무시알라


5명이 뽑힌 공격진의 조합도 눈여겨볼만 하다. 다섯 선수 모두 각자의 소속팀에서 제각기 다른 롤을 맡고 있기 때문에 나겔스만 감독이 이들을 얼마나 잘 조화시키고 실제 경기에서 활용하느냐가 관건이다. 특히 카이 하베르츠, 데니즈 운다프, 토마스 뮐러의 경우 유동적인 포지셔닝을 통해 2선과의 원활한 스위칭 플레이가 가능하다.
 
이중 운다프의 경우는 슈투트가르트에서 보여줬던 찬스 메이커로서의 면모를 유지한다면 전체적인 라인이 높은 팀을 상대로 매우 강력한 조커 카드로 활용될 수 있다. 또한 소속팀 호펜하임에서의 뛰어난 성적을 바탕으로 나겔스만의 눈에 들어 3월부터 대표팀에 합류한 막시밀리안 바이어의 경우 라인 브레이킹에 엄청난 강점이 있기 때문에 독일 축구의 또 다른 조커 카드로서 기대해 볼 수 있다.

 

막시밀리안 바이어와 데니즈 운다프, 독일의 새로운 조커 카드가 될 수 있을까?

 


 

3. 에이스 카드

 

1.토니 크로스

 
이번 시즌을 끝으로 레알마드리드에서 은퇴한 토니 크로스는 자신의 마지막 대회인 유로에서도 핵심적인 선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2021년 독일 대표팀에서 은퇴한 크로스는 독일 국가대표팀 감독인 율리안 나겔스만의 합류요청을 받아들이며 독일 국가대표팀으로 복귀하였다. 독일 국가대표팀으로 복귀한 크로스는 복귀전인 프랑스전에서 95%의 패스성공률과 더불어 가장 많은 태클 성공을 하는 등 공수 양면에서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며 MOM으로 선정되었다.

크로스가 합류하기전 독일 대표팀은 지난 3경기동안 1무 2패의 최악의 성적을 보여주었으나 크로스가 합류한 뒤로 공격과 수비에서 모두 밸런스가 잡힌 안정적인 경기력을 선보였다. 경기력이 안정적이게 되니 성적 또한 자연스레 따라왔고 최근 4경기 3승 1무의 성적을 거두었다.
 

유로에서 마지막 불꽃을 피울 토니 크로스

 

2. 플로리안 비르츠

 
이번 시즌 분데스리가에서 레버쿠젠의 무패 우승을 이끌었던 핵심 전력이었던 비르츠는 이번 독일 대표팀에서도 핵심 전력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4-2-3-1의 좌측 윙어 자리에 나올것으로 계속해서 나왔기 때문에 유로에서도 똑같은 자리에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좌측에서의 감각적인 터치와 드리블로 상대 우측을 무너뜨린 이후 상대의 허를 찌르는 패스들로 득점 찬스를 여럿 만들 것이고 이는 독일의 큰 무기가 될 것이다.
 

독일 축구의 에이스로 거듭난 플로리안 비르츠, 레버쿠젠에서의 활약상을 이어갈 수 있을까?

 
 

3. 마누엘 노이어

 
현 독일 대표팀의 수비라인이 견고하다고 하기 어려운 상황이기에 백전노장 노이어의 어깨는 더욱 무겁다.

레버쿠젠 무패우승의 공신인 요나탄 타와 레알 마드리드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큰 공헌을 한 뤼디거가 주축으로 있는 독일 대표팀 수비진이지만, 이 두 선수 모두 독일 국가대표팀에서는 클럽에서만큼의 활약은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기에 노이어의 활약이 중요한 상황이고 이 둘의 실수를 노이어가 얼마나 잘 커버해주냐에 따라 독일 대표팀의 성적은 달라질 것이다.

노이어의 마지막 국제대회가 될 공산이 큰 유로 2024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쳐 유로 우승을 들어 완벽한 커리어를 완성시키길 바라고 있다.
 

마누엘 노이어의 마지막 국제 대회가 될 공산이 큰 유로 2024, 자신의 마지막 국제 무대를 우승으로 장식할 수 있을까?

 


4. 장단점 및 전망

 
나겔스만 감독이 사령탑에 부임한 이후 독일 대표팀의 조직력은 비약적인 상승세를 보였다. 나겔스만 감독의 확고한 전술적 철학 아래에서 짧은 시간 안에 원팀을 만드는 데 성공했고, 한지 플릭의 시스템을 어느 정도 차용하는 동시에 자신이 추구하는 시스템도 함께 잘 녹여내어 각 선수들의 장점을 극대화했다.
 
미텔슈타트-키미히가 전담하는 측면 공간에 대한 활용 빈도가 잦은 편은 아니지만, 두 선수를 활용해 공격의 폭을 적절히 확보함으로써 상대 수비블록의 시야를 분산시키며 이를 통해 독일의 최대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2선 자원들에 대한 시공간적 여유 및 볼 배급의 유동성을 높였다.
 
예를 들어, 아래의 상황에서 미텔슈타트는 측면 높은 구역을 점하고 있다. 독일은 키미히가 후방 빌드업에 가담한 이후 높은 공간으로 올라가지 않은 상태에서 1-3-2-5와 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다. 독일의 목표는 2선 공간에 분포하고 있는 비르츠-귄도안-무시알라를 향해 볼을 배급해 주는 것이며, 이를 위해 미텔슈타트가 높은 공간에서 우크라이나의 우측 풀백 코노플리아를 고정시키고 있는 모습이다.
 

측면 높은 공간에 머물며 상대 우측 풀백 코노플리아를 피닝하는 미텔슈타트

 
타가 볼을 잡고 전진한 상황에서 그로스는 타의 대각선 각도를 향해 포지셔닝을 취하며 상대 미들라인의 폭 밖에서 전진패스 각도를 확보하였고, 타는 상대 수비블록의 인터벌을 통한 전진패스 루트를 발견하긴 했으나 성급하게 판단하지 않고 볼을 받기 위해 더 적절한 포지셔닝을 취하고 있는 그로스에게 볼을 내주었다.
 
그로스를 거쳐서 2선으로 볼이 투입됨으로써 상대 우측 풀백인 코노플리아의 견제를 받지 않고 상대 포켓에 프리하게 위치해 있던 비르츠는 타가 자신에게 다이렉트로 전진패스를 찔러줄 경우 점프-아웃을 준비하던 상대 우측 센터백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시공간적인 여유를 벌었다. 이후 완전히 프리한 상황에서 그로스를 통해 포켓에서 볼을 받게 된 비르츠는 독일의 위협적인 장면을 이끌어냈다.
 

타-그로스를 거쳐 볼을 받음으로써 완전히 프리하게 포켓 지역을 점유할 수 있었던 비르츠

 
이뿐만 아니라 비점유 국면에서도 높은 지역에서는 강한 강도의 카운터 프레싱을 구사하고, 상대가 골킥을 처리하는 경우 터프한 수비에 강점을 보이는 타, 뤼디거, 안톤 등의 수비자원만을 남겨둔채 높은 지역에서 전방 압박을 시도하는 등 일관된 게임모델을 바탕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데 능한 모습을 보였다.
 
이와 더불어, 나겔스만의 시스템을 현실로 구현해낼 수 있는 전체 선수단의 퍼포먼스가 전 세계를 통틀어 보아도 최고치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 예로써 촘촘한 로우 블록의 미들라인 협소한 사이 공간을 통해 2선 자원들에게 볼을 배급해 주는 안드리히, 크로스, 그로스 등 3선 자원의 역할 수행 능력을 들 수 있는데, 이처럼 각자의 포지션에서 본인이 어떤 기능을 해야 하는지 잘 인지하고 있을뿐더러 수행 능력도 좋기 때문에 이번 유로에서의 독일의 전망은 매우 밝다고 볼 수 있다.
 

우크라이나전 매우 압도적인 모습을 보인 독일 대표탐

 
반면 독일은 짧은 시간 안에 구축된 팀이기 때문에 수비라인에서의 불안감이 적지 않게 노출되기도 한다. 나겔스만 체제 하에서 8경기 동안 13득점 10실점을 기록했는데, 부진을 면치 못한 11월 A매치의 터키-오스트리아 2연전이 실점의 절반을 차지하긴 하지만 이를 제하고 보더라도 프랑스전이나 그리스전의 경우 수비적인 위험을 노출한 바 있다. 대표팀의 특수성에 따라 클럽팀에서만큼 호흡을 많이 맞추지 못하기 때문에 수비진이 보다 활발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수비 상황에 적절히 대처해야만 한다.
 
또한 득점에 관해서도 마무리 패스 및 슈팅 과정에서의 약간의 답답한 측면이 보여지고, 이것이 우크라이나전과 같이 무득점 경기로 이어진다면 어떠한 변수가 창출될지 모르기 때문에 5인의 공격진이 적절한 조화를 이룰 수 있게 하는 나겔스만 감독의 기용술 및 선수들의 결정력이 모두 필요하다.
 
이번 유로 대회에서의 독일의 전망은 매우 밝다. '녹슨' 전차군단으로 전락하는 듯했던 2023년까지의 이미지에서 완전히 탈피했고, 당당히 우승 후보에 이름을 올리며 디만샤프트의 화려한 부활을 알렸다. 나겔스만의 독일 대표팀은 2014 월드컵 이후 10년만의 메이저 대회 우승 트로피와 함께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까?
 


*FCU 박현수님과 함께 작성한 글이며, 6월 12일자 FCU 매거진에도 함께 실릴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