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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윤의 개축잠담소 21편]-약속은 지킨다, 부산의 페레스

오성윤 2021. 5. 11. 23:37

“새로운 시스템으로 축구색을 입혀가는 과정이다. 실수가 나온다고 전술을 바꾸면 절대 하고자하는 축구를 완성할 수 없다. 나를 비롯해 구단, 팬 여러분도 기다려주면 좋은 결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현 시점 가장 큰 상대는 우리 자신이다. 우리만의 축구 색을 완성하기까지 기다림, 희생 등이 필요하다. 팬들이 원하는 재밌고 역동감 넘치는 축구를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그 과정에 있다”이번 시즌 부산의 새 사령탑을 맡게 된 리카르도 페레스 감독의 개막전 패배 후 인터뷰이다.

부산은 시즌 전 경남을 방불케하는 이적시장 폭풍영입을 하며 수준급의 선수들을 쓸어갔다. 수준급 선수들이 팀에 즐비하니 부산에게는 기대에 눈길이 쏠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자신만만하게 출사표를 던진 페레스 감독의 자부심과는 다르게 결과는 예상 외였다. 충격의 충남 아산전 4:0 패배 등 안좋은 결과를 가져왔고, 패배 속에서도 승리를 몇 챙기긴 했지만 그 경기력이 마냥 좋지 않았다. 부산팬들은 격노하고, 벤투의 추천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지만 페레스 감독은 훗날의 호성적을 기약하며 팬들에게 인내를 부탁했다.

포르투갈 감독 페레스는 결코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나이가 아니었다. 부산에 자신만의 색을 입히며 점점 팀의 경기력을 끌어올렸다. 페레스는 노력 끝에 결국 약속을 지키는데 성공했다.

리그 상위권인 대전에게 4-1로 대승을 거둔 것이다. 부산의 아놀드 최준가 수트라이커 황준호가 엄청난 활약을 선보이며 전반전 기세를 잡는데 완전히 성공했다. 후반전에는 정희웅에게 골을 허용하는 등 약간 불안한 낌새가 있었지만 결국 리더 안병준이 교체투입되어 쐐기를 박아 대전을 잡는데 크게 일조했다.

부산의 시즌 초반 공격을 풀어나가는 방법은 지금과 대동소이했다. 최준과 박민규가 있는 양쪽 측면을 통한 박스 안 볼투입을 꾀했고, 날카로운 오른발의 소유자 드로젝을 중심으로 공격을 풀어나갔다. 그러나 항상 섬세함과 마무리가 부족했다. 섬세함 결핍으로 인해 빌드업에서의 실수가 잦았고, 앞서 문제점으로 꼽은 아쉬운 마무리 패스 또한 섬세함 결핍으로 인해 발생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섬세함 뿐만 아니라 조직력도 갖춰졌다. 이상헌, 최준, 안병준 등 선수단이 대거 교체된 부산이었기에 더욱 필요한 조건이었다. 끈끈한 조직력에 서로 눈이 맞았을 때 호흡을 맞출 수 있는 섬세함까지 가미되었으니 페레스 감독의 철학은 실현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대전전 김진규의 선제골이 바로 그렇다. 중앙선 조금 위 부분에서 볼을 잡은 이래준이 오른쪽 오버래핑을 하는 최준을 확인했고, 정확한 롱볼을 뿌려주었다. 이래준의 패스를 받은 최준이 약속된 듯이 중앙으로 낮고 빠른 크로스를 보내주며 김진규의 시즌 첫골이자 부산의 선제골이 터졌다. 이래준의 롱패스-최준의 크로스-김진규의 깔끔한 슛으로 만들어진 완벽한 합작이었다.

페레스 감독의 색이 부산에 제대로 입혀지기 시작하니 선수들은 자신의 장점을 하나둘씩 발휘하기 시작했다. 안병준은 가공할만한 슈팅을통해 리그 득점왕 부문 1위에 올라서있고, 최준은 우측 측면에서 자신의 공격력을 마음껏 발휘중이다. 박정인도 초원에 풀어진 사자처럼 자유롭게 뛰어다니며 자신의 재능을 뽐내고 있다.

선수들의 재능 발휘는 부산에게 미숙한 공격 전개 타개 방안을 가져다 주었다. 이젠 더 이상 공격 시 풀어나갈 곳을 찾지 못해 뒤로 한발 물러나거나 의미없는 중거리 슈팅을 남발하지는 않고 있다. 공격 풀이에 방점을 찍은 부산은 이제 일보후퇴를 하더라도 이보 전진을 위한 후퇴를 하고 있다.

페레스 감독을 기다리는데 많은 시련을 겪은 부산팬들에게 대전전 대승은 기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앞으로 걸을 꽃길도 무척 기대되리라예상한다. 페레스 사단의 성공은 부산에 국한되는 것이 아닌 K리그 자체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이라 생각한다. 벤투의 눈은 틀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