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축구/국가대표팀

<독일이 공간을 만들어내는 방법>

오성윤 2021. 9. 19. 02:31

서론


2020/21 시즌을 끝으로 바이에른 뮌헨과 결별하게 된 한지 플릭 감독이 독일 대표팀의 새 사령탑에 올라섰다. 유로 2020 종료 직후 요아힘 뢰브 감독의 장기집권 체제가 붕괴되며 공석이 된 감독직을 맡게된 것이다.

독일 대표팀에서의 새로운 여정을 떠나게 된 한지 플릭 감독은 9월 초에 진행된 2022 카타르 월드컵 최종 예선을 통해 첫 선을 보였다. 플릭 감독은 예상대로 자신의 뛰어난 감독적 역량을 발휘하며 예선 상대로 대적하게 된 리히텐슈타인, 아르메니아, 아이슬란드를 상대로 차례대로 대승을 거두며 성공적인 데뷔전을 가졌다.

독일이 상대한 세 국가가 비교적 쉬운 상대임에는 이견이 없으나, 모두 강팀 독일을 상대고 상당히 조심스럽고 내려앉는 경기 스타일을 드러냈기 때문에 한지 플릭 감독이 고찰하고 궁리했을 실질적인 고민은 ‘승패의 여부 ’보단 ‘공간의 활용과 다득점의 여부’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지 플릭 감독이 밀집 수비를 타개하기 위해 선보인 공간 창출의 여러가지 방법에 대해 다뤄보고자 한다.

출처: https://m.faz.net/aktuell/sport/fussball/hansi-flick-wird-fussball-bundestrainer-als-jogi-loews-nachfolger-17357318.am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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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센터백의 활용


한지 플릭은 상대가 공격의 속도는 낮추며 공격적 움직임을 스스로 제한하고, 수비에 치중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이를 역이용했다. 밀집 수비의 타개책으로써 최대한 많은 인원을 동원하여 공격 작업을 이끌어나가는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플릭 감독은 이를 위해 수비 라인을 높게 끌어올리며 라인과 라인 사이 공간을 최소화 시켰고, 수비수들의 센터백의 공격적 기용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독일이 공격 국면을 맞이할 때 구축하는 기본 포메이션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플릭 감독은 레프트 백으로써 출전한 틸로 케러를 왼쪽 스토퍼로, 오른쪽 센터백으로 출전한 니클라스 쥘레를 오른쪽 스토퍼 자리에 배치하며 3백을 구축했다. 여기서 우측 풀백으로 출전한 요나스 호프만이 오른쪽 윙어처럼 움직이며 1-3-2-5 내지 1-3-3-4 포메이션을 구축했다.

이 변화는 단지 수비 인원을 줄이고 공격 인원을 증가시키는 효과에서 끝나지 않았다. 3백을 구축한 케러-뤼디거-쥘레는 중앙선 부근 내지 너머까지 진출하여 공격적 영향권을 확대했으며, 양쪽 스토퍼들의 과감한 드리블을 통한 상대 진영으로의 전진은 공격적인 부분에 있어 직접적인 영향력을 끼쳤다.

아래 제시된 장면을 본다면, 측면 터치라인 부근에 자리잡고 있던 리로이 사네가 일찌감치 중앙으로 들어오며 측면공간을 발생시키고, 그 틈을 파고 들던 틸로 케러가 뤼디거의 롱패스를 받으며 위협적인 장면을 한차례 만들었다. 사네의 위치선정, 케러의 공격적 움직임, 그리고 결정적으로 케러의 공백을 메꾸어 주는 고레츠카의 움직임까지, 이 삼박자가 모두 맞아 들어가며 연출된 장면이다.

틸로 케러의 오버래핑(출처: Astro Supersport 중계화면 캡쳐)


앞서 나열한 독일 수비진의 공격과의 직접적인 연관성도 연관성이지만, 현대축구에서 가장 중요한 전술적 요소 중 하나인 ‘전환’과 상대의 촘촘한 수비를 풀어내기 위한 동료들과의 ‘시너지’에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먼저 ‘전환’에 대해 살펴보자. 한지 플릭 감독이 위험을 감수하면서라도 수비 라인을 높게 끌어올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전환에 있다고 생각한다. 상대가 방심할 수 없도록 높은 위치에서 볼을 돌리며 상대가 형성한 수비 블록을 유인하고, 상대 수비 블록이 한쪽 방향으로 치우침으로써 창출되는 공간을 공략하는 의도가 담아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래의 장면을 예시로 들어본다면, 독일이 오른쪽 측면을 따라 공격하는 방식을 취하자 아르메니아의 수비 블록은 전체적으로 오른쪽으로 이동하며 공간을 틀어막았다. 상대 수비의 대대적인 이동의 결과로 독일의 왼쪽 측면에 공간이 발생했는대, 높은 위치에서 볼을 소유하게 된 뤼디거는 자신의 좋은 롱패스 능력으로 해당 공간에 위치한 사네를 향해 공을 투입했다.

이 장면을 통해 한지 플릭은 밀집 수비를 파훼하기 위한 방안으로써 비단 양측 스토퍼 뿐만이 아니라 중앙 수비수도 높은 위치까지 올리며 공간 창출의 용이성을 가하고자 꾀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뤼디거의 방향전환(출처: 위와 동일)


이번엔 ‘시너지’이다. 시너지 또한 플릭 감독이 3백을 높게 위치시킨 이유 중 하나이다. 사실상 ‘전환’ 부분 이전 설명했던 ‘센터백들의 직접적 공격 영향력’의 연장선이라 보아도 무방하다. 가용할 수 있는 최대한 많은 인원을 활용해 화력의 최고치를 이루고자 하는 의도가 동일하기 때문이다.

아래 장면의 경우 플릭이 선보이고자 한 시너지 효과를 아주 잘 드러냈다고 생각한다. 쥘레가 높은 위치에서 상대 레프트백을 유인해 내려오는 그나브리에게 공을 연결했고, 뒤이어 볼을 이어받게된 키미히를 경유해 호프만이 순간적으로 쇄도를 시도하는 왼쪽의 확보된 공간에 침투 패스를 찔러줬다.

마지막 패스가 너무 길었기 때문에 결과론적인 관점에서 이 공격 시도는 실패로 사료되나, 한지 플릭이 극대화시키고자 하는 센터백의 전진성과 공간 활용의 상응 관계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생각한다.

노란색:패스, 빨간색시야, 검은색:움직임(SkySports 중계 화면 캡쳐)

요약하자면, 한지 플릭 감독은 수비 라인을 끌어올림으로 수비진의 공격성을 증대시키고, 공간을 발생시킬 수 있는 전환과 2•3선 미드필더와 공격진들 간 시너지 효과를 용이하게 하고자 하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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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네의 영리한 움직임


상대의 내려앉은 수비 라인, 촘촘한 라인 사이 간격을 타파해야만 했던 독일로서는 수비진의 공격 참여도를 늘려가면서 공격 시 수적으로 거의 대등한 상황을 만들었다. 수비진의 기여 덕분에 독일의 공격은 마치 윤활유를 바른 듯이 매끄러울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미드진과 공격진이 보여주는 전방에서의 움직임이 필요했던 것은 사실이다.

여러 선수들이 경기장을 누비며 공간을 찾아다녔지만, 개인적인 시각으로는 사네의 움직임이 굉장히 눈에 띠었고, 대표팀에서 차지하는 사네의 비중이 굉장히 거대하며, 더 나아가서 향후 대표팀에서의 전망도 밝을 것이라 말하고 싶다.

사네는 기본적으로 왼쪽 측면에서 로빈 고젠스와 호흡을 맞췄다. 괄목할만한 공격적 센스를 가진 두 선수이기에 전방에서 보여줄 시너지 효과에 대한 기대치는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뮌헨에서 사네와 알폰소 데이비스가 그랬던 것처럼 사네와 고젠스의 동선이 겹치지 않을지 등의 우려 또한 혼재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플릭 감독은 사네와 고젠스의 동선을 고의적으로 엇갈리게 했다. 고젠스가 측면 높게 포진하여 볼의 주도권을 잡을 때 사네가 중앙지향적인 움직임을 보였다면, 반대로 사네가 측면에서 볼을 잡을 때는 고젠스가 중원으로 방향을 전환하거나 2선 선수들에게 주고 중앙으로 들어가는 움직임을 시도했다.

플릭 감독은 둘을 공존시키기 위한 다른 방법으로써 고젠스의 킥 능력 극대화시킨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사네의 포지셔닝 플레이에 의해 공간이 만들어지면, 고젠스는 그 공간을 통해 쇄도하는 공격진에게 키패스를 찔러줬다. 그렇다면 고젠스의 볼이 안정적으로 투입되기 위해 사네의 포지셔닝 플레이가 차지하는 바는 실로 대단했다.

아래의 장면을 살펴보자. 고젠스가 볼을 잡은 상황이고, 사네는 측면 침투 움직임, 베르너는 전방 쇄도 움직임을 가져갔다. 여기서 사네가 측면으로 빠져들어가는 움직임을 가져감으로써 리히텐슈타인 수비진 3명의 시선을 끌었다. 사네의 움직임 덕분에 베르너에게 조금의 빈 공간이 주어졌고, 고젠스 또한 완성도 높은 볼 투입을 성공시킬 수 있었다.

(Astro SuperSport 중계 화면 캡쳐)


왼쪽에서의 사네는 오프 더 볼 움직임을 통해 공간을 만들어냈다면, 오른쪽에서의 사네는 경기를 주도하고 동료 선수들과 시너지 효과를 내며 직접 공간을 창출했다. 이러한 사네의 오프 더 볼은 그저 밀집 수비 타개법의 일환으로 치부될 수 있지만, 플릭 감독의 신임을 얻은 사네의 탄탄한 입지를 암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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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미드필더 사용술

한지 플릭은 양쪽 풀백을 포함한 거의 대부분의 선수들을 전방에 공격 자원으로 분류하는 대신 3백과 두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를 두며 안정감 또한 추구했다. 주로 키미히-고레츠카 내지 키미히-귄도안이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를 꿰찼다.

두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의 역할은 각각 달랐다. 한명이 3백 바로 앞을 보좌하며 후방 다이아몬드 대형을 만들며 전방과 후방 사이의 근간으로서 빌드업을 돕는다면, 나머지 한명의 미드필더는 상대와의 수적 동위를 위해 2선에 위치하거나 간헐적인 침투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아래는 키미히가 순간적으로 박스 안 침투를 시도하는 장면이다. 다시 말해 고레츠카는 후방을 지켜주는 수비적인 역할을 맡는 동시에 키미히는 공격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독일은 우측으로 방향을 전환한 후 그나브리를 통해 볼을 박스 안 내지 근처로 투입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최종적으로 그나브리가 볼을 잡으며 박스 쪽으로 볼의 방향을 바꾸자, 박스 근처에 고립된 베르너의 위치를 확인한 키미히는 순식간에 흔히 ‘하프 스페이스’로 통용되는 수비 사이 공간으로 침투해 들어가며 상대 센터백 두명의 시선을 끌었다.

키미히의 활약으로 라인과 라인 사이에 균열이 일어나며 패스길을 확보했고, 득점은 무산됐지만 독일은 공격 쪽에서 좋은 찬스를 획득할 수 있었다. 키미히는 공격과 수비의 근간이 되며 전환을 원활하게 하고, 압박으로써 상대의 역습을 끊는 등의 역할을 도맡은 것으로 판단되는데, 키미히는 불규칙한 침투 움직임을 선보이며 미드필더로써 팀의 공격적인 부분에도 기여했다.

(Astro Supersport 중계 화면 캡쳐)


이 장면 또한 미드필더의 쇄도 움직임이 가져다주는 이점을 잘 설명하고 있다.

우측에서 호프만이 볼 투입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 귄도안과 그나브리가 동시다발적으로 전방 침투를 시도하며 상대 수비진에 허점을 만들어냈다. 귄도안의 순간적인 침투가 상대 수비 2명의 혼동을 이끌었고, 이를 통해 그나브리는 압박을 받지 않는 자유로운 상황에 놓이게 됐다.

키미히가 라인과 라인 사이의 균열을 야기했다면, 귄도안은 선수들의 횡적인 간격 사이 균열을 초래했다. 또한 귄도안의 장점은 침투 움직임을 잘 살린 전술적 움직임이라 칭할 수 있는데, 밀집 수비를 뚫기 위해 귄도안의 움직임을 통해 직접적인 득점을 행사하는 것이 아닌 동료들에게 공간을 열어주게끔 한 점에서 고무적이었다고 생각한다.

(Astro Supersport 중계 화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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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센터백의 활용, 사네의 영리한 움직임, 그리고 미드필더 사용술까지, 최후방부터 최전방까지의 호흡이 모두 들어맞았기 때문에 밀집 수비를 상대로 어렵지 않은 승부를 펼칠 수 있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이것들을 실현하기 위해 선수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한 플릭 감독의 용병술도 한몫을 했다.

비단 배치 뿐만 아니라 발탁 또한 플릭 감독의 전술 철학과 의도성에 부합하다고 생각한다. 대표적으로는 발기술과 전진성이 좋은 쥘레, 그리고 박스 안 쇄도 움직임에 뛰어난 귄도안이 있겠다. 현재 폼과 자신의 전술 철학에 일치하는 선수들을 선별해 발탁하는 플릭 감독의 행보는 그가 보여줄 전술과도 이어지기 때문에 앞으로도 지켜볼 필요가 있다.